2010년 2월 13일 토요일

[이슈] 도요타, 대규모 리콜사태 이후

 

[이슈] 도요타, 대규모 리콜사태 이후

올해 적자 불가피하나 경쟁력은 여전
예상치 못하게 도요타 리콜 문제가 일파만파로 확대되고 있다. 최초 문제발생 시 별것 아니라는 미온적 태도로 대응하던 도요타는 소비자들의 항의와 미국 고속도로안전관리국(NHTSA)의 계속된 안전문제 제기로 공장가동 중단과 8개 핵심모델 리콜이라는 결단을 내리기에 이르렀다.

물론 리콜 문제에도 도요타의 건재는 의심할 여지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2000년부터 일본 내에서 리콜 건수가 지속적으로 증가해 대대적 이슈가 됐던 도요타 품질 저하문제가 다시 대규모 리콜로 수면에 드러난 것은 도요타 이미지에 적지 않은 부담이 될 것이다. 소비자들의 문제제기에도 ‘제품결함이 아니다’는 주장을 반복하다가 이를 번복한 점, 페달 생산업체인 CTS와의 책임공방, 북미·아시아 소비자들에 대한 차별 등 이번 리콜을 둘러싼 도요타의 실망스러운 대처는 완벽했던 도요타의 기업이미지를 상당히 실추시킬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번 리콜은 GM을 제치고 세계 1위로 올라서자마자 생긴 일이다. 서브프라임 사태로 미국에서 큰 폭의 판매 감소가 나타나고 있고, 엔고로 수출채산성이 악화된 시점에서 발생했다는 점에서 도요타에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59년 만에 대규모 적자를 기록하면서 ‘도요타 쇼크’란 신조어가 생겼을 정도다. 도요타의 실적이 악화된 이유는 수익의 절반 이상을 창출하던 미국 시장에서의 고전에 기인한다. 특히 렉서스 같은 럭셔리 브랜드의 판매가 감소하면서 수익성이 악화됐다. 게다가 미국 공장에서 공격적으로 생산, 확대했던 픽업트럭에 대한 시장의 외면, 이익기여가 거의 없는 하이브리드 프리우스(Hybrid Prius)의 판매량 증가, 상대적으로 마진이 적은 소형차 판매 증가와 엔고로 인한 수익성 악화 등이 주요한 이유다. 중국, 인도 같은 신흥시장에서의 고전과 일본 자동차시장 성숙에 따른 보수적 소비성향 지속도 미국에 대한 의존도를 키운 이유가 됐다.

도요타 10조5000억엔 순자산 보유

이로 인해 도요타는 지난해 4610억엔의 적자를 기록했고 올해도 적자를 면하기 힘들어 보인다. 구조조정 이후 흑자전환을 기대했지만, 예기치 않은 리콜사태가 터지면서 적자폭을 줄이는 데 만족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물론 10조5000억엔이라는 천문학적인 순자산을 보유하고 있어 이 정도 충격에는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GM과의 외형 경쟁이 과도해지면서 700만대의 적정 생산 양산성(Capa)을 단기간에 900만대까지 늘린 것은 여전히 부담요인이다. 서브프라임 사태가 터지면서 신용경색과 소비 축소가 동시에 진행돼 자동차 판매는 대공황 수준까지 추락했고, 지난해 판매량이 700만대에도 미치지 못해 생산과잉(Over capacity) 문제가 대두됐다. 생산 대비 판매량이 턱없이 부족해 대규모 재고가 쌓였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또 막대한 인센티브를 지출했다. 렉서스의 경우 대당 1만달러의 딜러인센티브를 제공하기도 했다. 판매 감소에 따른 가동률 하락과 엔고 지속은 수익성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2002년 미쓰비시자동차의 리콜 은폐에 따른 소비자들의 외면 과정을 보면, 도요타도 이번 리콜이 상당한 위험요인임에는 틀림없다. 미쓰비시는 92~97년에 만든 승용차 결함 은폐와 96년부터 생산한 트럭, 버스의 바퀴 결함 은폐가 2000~2002년 사이 밝혀지면서 큰 충격에 휩싸인다. 분노한 일본 소비자들이 미쓰비시 차를 외면하기 시작했고 이로 인해 미쓰비시는 파산 직전까지 몰리게 됐다. 도요타 역시 2000년 이후 리콜 은폐의혹이 끊이지 않고 있다. 픽업트럭 툰드라의 지붕강도 안전기준 미달에 따른 리콜 요구(LA법원에 소송)나, 2007년에 유럽에서 제기된 가속페달 문제에 대한 묵살 등의 정황들이 밝혀지면서 소비자들의 신뢰가 하락하고 있다. 또 페달생산업체인 CTS의 제조상 결함으로 탓을 돌렸으나, 도요타 측의 설계결함이라는 CTS 측의 맞대응 등으로 곤혹을 치르고 있기도 하다.

현대기아차 시장점유율 상승 중

도요타는 오일쇼크와 플라자합의 등 큰 위기를 국외 생산 확대와 품질개선, 플랫폼 통합 확대, 라인당 8~9대의 혼류생산 등으로 훌륭히 극복해왔다. 도요타의 최대 강점인 ‘높은 품질’과 비용절감과 대량생산을 통한 ‘생산효율성’은 모든 제조업체들의 모범답안으로 여겨져왔다. 하지만 빠른 외형확대에도 불구, 품질관리가 느슨해지면서 계속해서 품질에 불만이 제기된 것이다. 생산성 향상 노력이 한계에 부딪치면서 오랜 문제들이 표면화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특히 적자를 탈피하기 위해 부품회사들에 30%의 단가 인하를 요구하고 있는 시점이라 부품 소싱에서의 문제점 노출은 적지 않은 부담요인이 될 수 있다.

도요타의 예상 외 실기는 현대차에 기회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우선 시기적으로 투싼ix, YF쏘나타가 출시되는 시기에 도요타 경쟁차종이 대규모 리콜사태로 부진할 가능성이 크다. 이는 미국 내 시장점유율과 상대적 열세였던 현대차 브랜드 향상에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지난해 12월 18.2%였던 도요타 시장점유율(M/S)은 올 1월에 14.1%대로 추락한 반면, 5.3%였던 현대기아차의 시장점유율은 7.5%까지 상승한 것도 리콜의 영향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캠리의 내수시장 공략이 막 개시된 시점에서 국내 시장점유율의 잠식에 일부 제동을 걸어줄 가능성도 있다. 1월 말 공론화가 시작된 만큼 부정적 여파는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현재 리콜의 범위, 대상, 지역이 느는 추세다. 도요타의 신차판매가 감소하면서 현대차는 단기적으로는 시장점유율의 반사이익을 볼 것으로 보인다. 브랜드 이미지 격차도 줄어들 수 있다. 주가 측면에선 글로벌 투자자들의 현대차-기아차 간 롱숏 매매(두 종류의 상품으로 사고파는 매매전략)도 예상해볼 수 있다.

도전받고 있는 도요타방식(Toyota Way)

단기간 국외 생산능력을 확대한 것이 원인

도요타가 안정적인 성장세를 구가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도요타 방식이라는 철학이 깔려 있다. 도요타 방식은 그동안 도요타가 성장하면서 축적한 노하우를 도요타 전 직원에게 전파하기 위해 2001년에 내부 매뉴얼 형식으로 출간하면서 각광받기 시작했다. 도요타 방식의 양대 기둥은 인간성 중시와 지속적인 개선이다. 도요타는 그 가치를 도전, 개선, 현장 확인, 상호 존중과 팀워크라는 5대 원칙으로 요약하고 실행에 옮겨왔다.

이번 도요타의 대규모 리콜은 도요타 방식의 문제로 발생했다기보다는 단기간 내에 추진한 국외 생산능력 확대, 부품 공통화와 조달 개방화 및 현지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다고 본다.

또한 기업 규모의 거대화에 따른 대기업병과 세계 1위에 등극하면서 자만에 빠졌기 때문이라고 판단된다.

문제가 되고 있는 도요타 차량의 급가속 문제는 도요타가 세계 1위를 차지하겠다는 장기 비전을 발표한 2002년에 이미 발생했다. 그러나 도요타는 문제를 간과하면서 1위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국내외 생산능력을 늘리고 친환경자동차를 대량생산하는 데 치중했다.

도요타는 국내외 설비와 연구개발 투자재원을 확보하기 위해 원가절감에 적극 나섰다. 2000년부터 3년간에 걸쳐 30%의 원가를 절감하고, 2005년에도 가치혁신 전략을 통해 부품 수를 축소하고, 공정을 단순화하는 한편 낭비 요인을 철저히 제거했다.

그 결과 순익은 지속적으로 증가했으나 품질 신화는 점차 퇴조했다. 2007년부터 품질 결함으로 소비자 항의가 잇따랐기 때문이다.

2006년에는 도요타의 국외 생산이 국내 생산을 웃돌았으나, 초기 품질평가에서 현대차에 밀리는 수모를 겪었다. 고속 성장의 그늘에 가려 세계 최고의 품질에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도요타는 2007년에 사상 최대의 흑자를 실현하고 2008년에 세계 1위의 자동차업체로 등극할 수 있었으나, 60여년 만에 약 5조원의 적자에 직면했다.

이에 따라 도요타는 지난해에 경영진을 대폭 물갈이하고 구조개편에 착수했으나 이미 대규모 리콜의 불씨는 타오르고 있었다. 이번 리콜사태가 도요타 판매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지만 도요타 방식 자체가 무너진 것은 절대 아니다. 일본에서 생산한 자동차의 품질에는 아직까지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기계산업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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