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2월 22일 월요일

[뉴시스아이즈]토요타 추락에 "이번이 기회" 타업체들 추격전

[뉴시스아이즈]토요타 추락에 "이번이 기회" 타업체들 추격전 뉴시스 | 2010-02-23 10:58:09

 
【서울=뉴시스】김훈기 기자 = 지난 80년간 세계 자동차 시장을 호령하던 미국의 제너럴모터스(GM)를 밀어내고 2007년 세계 시장 1위에 오른 토요타가 사면초가 신세로 전락했다.

3년간 승승장구하던 토요타에게 '승자의 저주'가 내린 걸까. 역대 어느 메이커에서도 볼 수 없었던 1000만 대에 육박하는 대규모 리콜이라는 엄청난 일이 벌어진 것이다. '품질 제일'을 금과옥조로 여기던 토요타가 급격한 시장 확장 전략을 펴다 결국 화를 부른 것이다. 그 여파로 주가도 리콜 사태 이후 18%나 하락했고, 올해 해외 판매 목표도 10만 대 줄어든 740만 대로 수정했다.

GM은 이번 기회를 빌미로 세계 시장 1위 재탈환을 노리고 있고, 현대차 또한 미국을 비롯한 세계시장 판매 확대를 위해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 유럽은 물론 중국 업체들까지 가세해 무주공산을 차지하기 위한 자동차 업계의 처절한 백병전이 시작된 것이다.

◇"기회는 이때다…토요타 팔면 1000달러 줄게"
토요타 사태가 터지자마자 재빠르게 움직인 것은 미국 업체들이다. 이번 사태를 빌미로 시장 재탈환을 위해 공격적 마케팅을 벌이고 있다. 이미 GM과 포드는 토요타 차를 팔고 자사 차를 사면 1000달러씩 깎아준다며 소비자를 유혹하고 있다. 미국시장에서 토요타와 경쟁관계였던 현대·기아차 역시 같은 마케팅 전략을 쓰고 있다.

반응은 호의적이다. 토요타 측이 리콜에 대응하는 자세가 소비자들의 화를 돋우는, 오만한 대응을 보였기 때문이다. 괘씸죄에 걸려든 측면도 없지 않다. 도요다 아키오 사장이 리콜 사태가 터진지 한참이 지난 후 언론에 공식 사과하는 모습에서 실망감을 안겼기 때문이다.

실제로 토요타가 타격을 입으면서 자동차 업계 판도는 변하고 있다. 그 증거가 지난달 미국 판매량이다. 토요타는 작년 말 18.2%에서 14.1%로 뚝 떨어졌고, GM과 폭스바겐, 현대기아차는 점유율이 늘어났다.

중국 자동차 업체들도 기회를 틈타 세계시장 진출을 선언하고 나섰다. 상하이차는 피아트와 스즈키를 추월했다. 지난해 판매 기준으로 세계 9위에 오르며 한국과 미국·일본 업체를 바짝 추격하고 있다.

중국의 배터리전기차업체인 BYD(비야디)도 올해 미국 시장에 입성한다. 한 번 충전에 최대 330㎞를 달릴 수 있는 5인승 전기차 E6로 프리우스가 주춤하고 있는 미국 친환경차 시장을 공략할 방침이다.

동풍자동차는 오는 4월부터 한국에서 1t 트럭과 승합차를 판매할 계획이다. 이미 터키에서도 주요 차종을 현지 생산한 뒤 아프리카와 중동 지역에 수출키로 했다. 장성기차는 연산 5만 대 규모의 불가리아 스포츠유틸리티차(SUV) 조립공장를 올해부터 본격 가동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토요타의 자리를 눈에 띄게 잠식해 가고 있는 것은 독일의 폭스바겐이다. 토요타의 '대량 리콜사태'를 기회 삼아 세계 최대 자동차 회사의 타이틀을 노리고 있다.

지난 2월3일 폭스바겐의 마틴 빈터코른 최고경영자(CEO)는 런던에서 열린 투자자 컨퍼런스에서 올해 중반까지 800만 대 판매를 자신했다. 또 2018년까지 연 판매량 1000만 대를 달성하겠다는 공격적인 계획을 내놨다.

지난해까지 실적만 보면 토요타가 780만 대로 630만 대인 폭스바겐보다 19% 앞선다. 하지만 세계 최대 자동차회사를 향한 폭스바겐의 야심찬 계획은 최근 토요타가 리콜로 진땀을 흘리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지난해 침체된 업황에서도 중국과 브라질 시장덕분에 경쟁사보다 나은 성적표를 받기도 했다.

자동차 업계에서는 폭스바겐의 공격적인 확장 계획과 새로운 수익 목표가 토요타의 몰락과 동시에 나왔다는 점에서 폭스바겐의 야심이 그대로 드러난다고 평가하고 있다.

◇"자동차 업계, 자만·안심하긴 일러"
하지만 토요타가 보여준 대로 과도한 글로벌화가 자칫 품질에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수 있음에 유의해야 한다. 입맛이 다양한 여러 국가의 소비자 불만에 얼마나 신속 정확하게 대응하는지가 자동차 업체의 경쟁요소지만, 과당경쟁과 원가절감을 내세우다 보면 자멸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토요타 사태의 본질이 원가절감을 위해 마른 수건도 쥐어짜는 '린' 생산방식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시장선점을 위해 '과당경쟁과 저가할인'도 불사하는 무분별한 해외생산도 문제로 지적받고 있다.

'린' 생산방식은 시장수요에 탄력적으로 대응하고 생산비용을 줄이기 위한 토요타 생산체계의 핵심이다. 하지만 부품 단가를 강제로 낮추다 품질에 문제가 생겼고, 결국 1000만 대 가까운 리콜이 발생하는 단초가 된 것이다.

한 가지 더 주목해야 할 것은 토요타가 내수경기 침체와 해외시장 선점을 내세워 무분별하게 '몸집 불리기'에 나섰다는 점이다. 2003년에 이미 해외 생산량이 255만 대에 달했는데, 이는 1995년보다 약 두 배 이상 증가한 것이다. 2006년에는 총 생산량 750만 대 중 해외생산 비중이 절반을 넘어섰다.

통상 자동차 생산량이 600만 대를 넘어서게 되면, 품질 관리는 '신의 영역'으로 치부되곤 한다. 인간이 제어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섰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토요타는 비용절감을 위해 소위 '글로벌소싱' '현지조달'을 강행하며 특유의 '쥐어짜기'식 단가인하와 품질관리를 해외 업체에도 강요했다. 화를 부른 셈이다.

단가는 낮췄을지 모르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신뢰와 시장을 잃는 무모한 쥐어짜기였음이 드러난 셈이다. 양적 성장을 위한 해외 공장 확대가 지닌 치명적 결함을 드러내는 사례인 셈이다. 과당경쟁과 저가할인을 위주로 한 해외 판매 전략이 결국에는 품질불량이라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현대·기아차, 기회지만 자만해선 안 돼"
그런 의미에서 현대·기아차에게 주는 교훈은 적지 않다. 지난 20년간 현대·기아차가 생산방식의 롤 모델이 토요타였기 때문이다.

현대차 노조가 지난 2월5일 지부 소식지를 통해 "토요타가 몸집 불리기에 집착하다 '승자의 저주'를 불렀다"며 "현대·기아차가 단기간에 생산 시설을 수백만 대로 늘린 토요타를 모델로 삼고 있어 이 같은 전철을 밟을 수도 있다"고 언급한 것도 이를 우려해서다.

실제로 현대·기아차는 최근 수년 동안 미국·중국·유럽에 대규모 생산 공장을 증설하며 세계 5위 자동차 업체로 올라섰다. 노조에 따르면 해외공장 생산만 300만 대 이상이다.

해외 의존도가 높은 상황에서 언제든 결함이 생길 수 있는 만큼 이번 사태를 교훈 삼아 국내외 공장들의 품질력을 키우고 연구개발에 대한 투자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그나마 정몽구 회장이 토요타 사태가 확산되던 2월1일 경영전략회의에서 "토요타 사태가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라며 위기감을 강조한 것은 불행 중 다행이다.

'파괴적 혁신(disruptive innovation)'이론으로 유명한 클레이튼 크리스텐슨 하버드 경영대학원 교수가 '1등 기업'을 향해 내놓은 경고의 메시지는 그래서 더 간담을 서늘케 한다.

"선두에 서 있다는 것 자체가 위기다. 잘 나가는 기업도 한 방에 끝장날 수 있다. 정점에 오르면 더 이상 예전과 같은 성장률을 유지하기 어렵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정점에 오르면, 새로운 경쟁자들이 나타난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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