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7월 19일 화요일

장마당 스토리 2006/07/20 00:20 추천 4 스크랩 10

장마당 스토리 2006/07/20 00:20 추천 4 스크랩 10

http://blog.chosun.com/nkch/1282375

한 탈북자가 북한에 있을 때 참담했던 경험을 수기로 쓴 글을 옮겨 실었습니다.





탈북자 : 김운주



구름 사이로 햇살이 비치는 초봄이다. 오늘도 장마당으로 향한다. 장마당을 구경하는 것이 북한에선 가장 흥미로운 일이다. 물건 파는 사람, 단속하는 안전원(경찰)소매치기 소년들, 꽃제비들로 인산인해를 이룬 장마당은 참 볼거리도 많다.



무엇보다 사람구경이 제일 재밋다. 담배파는 할머니들, 떡 보따리 밑으로 손을 뻗어 떡을 훔치는 꽃제비들과 고함을 지르는 아낙네들, 생존 현장 그 자체다. 언제부터인가 기차역과 장마당 근처에는 몸파는 여자들까지 서성거린다.



지금 내 주머니에 단돈 백원이 있다. 월급 2천원(한국돈으로 환산하면 천원이 좀 못된다.)을 손에 쥘 때마다 1천900원은 장농 속에 넣어두고 백원 만 시장에 들고 나온다. 돈을 쓰기 위해서가 아니다. 장마당에 들어서면 백원도 없어 몇 달 전에 굶겨 죽인 아내와 딸에 대한 추억이 간절해지기 때문이다. 아 돈, 돈이 없어 먹을 것을 사 먹이지 못해 나는 그 귀한 생명들을 언 땅에 묻었다. 아내에게는 예쁜 옷을, 딸애에게는 그렇게 졸라대던 밀가루 빵을 사주는 것이 소원이었건만...




목숨이 질긴 탓에 홀로 살아남은 게 웬수 같아서 언젠가는 양잿물을 사려고 나왔던 적도 있는 그 장마당이다. 나는 특히 아이들 옷이나 장난감 파는 매점에 오래 서 있는 버릇이 있다. 그때마다 장사꾼들은 나를 보면 “쌀이 있는가?” 혹은 식용기름이 있으면 물건과 바꾸어주겠다고 서로 싸워가며 매달린다.




그들이 나에게 매달리는 것은 나의 시누런 군복 때문이다. 먹을 것이 없어 하루에도 수백명씩 굶어죽는 난리판이지만 당 간부들과 군대만은 식량배급이 정상적으로 공급되고 있었다. 그래서 군복 입은 사람들이 시장에 나오면 쌀을 팔려고 나오는 것으로 아는 것이다.




군복을 벗고 여기로 왔을 걸 하는 후회 때문인지 나는 그들의 팔을 신경질적으로 뿌리쳤다. 왜냐면 나는 가난한 군인이기 때문이다. 군복 입은 지 석달도 채 안돼 자기 잎에 풀칠도 하기 힘든 사람이다. 가족을 다 잃고 난 후 중앙에서 간부로 일하는 먼 친척 되는 사람이 인민군 총참모부에 줄을 대어 배급이라도 타 먹고 살라고 입혀준 군복이었다.




다행히 해양학 전공의 대학 졸업증을 가지고 있어서 ‘빽’만 있으면 바보도 출세하는 나라인지라 국방연구소에 중위 계급으로 입대할 수 있었다. 그런 나에게 쌀을 달라고 하다니, 나도 바로 몇 달 전에 처와 자식까지 굶겨 죽인 짐승 같은 놈이라고 그들에게 버럭 소리 지르고 싶었다. 그래서 오늘은 가족 생각이 더 간절해져서 과거를 돌이켜 볼만한 것을 하나라도 사야지 견디기 어려웠다. 뭘 살까.




나는 갑자기 허둥대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던 나에게 한 장사꾼이 들고 있는 빵이 보였다. 딸애가 그처럼 먹고 싶어 하던 밀가루 빵, 그 앞으로 다가간 나는 품속에서 돈을 꺼내며 얼마인가 성급하게 물어보았다. 장사꾼은 마침 백원이라고 대답했다. 빵이 든 봉지를 만져보니 아직도 따뜻했다. 순간 그 온기가 가슴으로 스며들며 나의 두 눈에는 눈물이 고였다.

아버지가 굶어서 눈만 말똥이는 어린 딸에게 빵 한조각 사먹일 수 없었던 그 참담함이 다시 피부로 느껴져 견딜 수가 없었다.



백원을 든 손이 금방 떨렸다. 나는 미안하단 말을 던지고 도망치 듯 그 자리를 피했다. 피하면서 빵을 만졌던 손을 힘주어 움켜쥐었다. 그 힘이 그대로 어깨에도 미쳤는지 사람들이 내 몸에 부딪치며 신경질을 내며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겹겹이 막아서는 인파를 뚫으며 시장출구로 향했다. 그런데 얼마 못가 도저히 전진할 수 없는 사람 장벽에 막혀버렸다. 키 돋움을 해서 앞을 보니 가운데는 텅 비워 있는 것 같았다. 아마 또 어떤 장사꾼이 기발한 아이디어로 구경거리를 만든 모양이었다.



버릴 것이 하나도 없는 조선에는 시장에 별의별 구경할 것이 다 있었다. 누구는 빈 깡통으로 기름등잔을 만들어 팔았고 누구는 담배꽁초를 주어 담배 힐터를 솜 대신 넣은 이불도 만든다. 풀죽도 먹기 힘든 나라여서 일명 송기떡이라고 하는 소나무 껍질로 만든 떡이며, 느룹나무 껍질을 말려 가루 내어 만는 누룹국수 등 아이디어 식품들이 넘쳐난다. 심지어는 세숫물도 판다. 전기가 없어 도시에 물 공급이 제대로 안되기 때문에 맹물도 상품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시장 어디가나 세숫물은 5원, 세수 비누는 십원, 이런식으로 셋트를 맞춰 장사를 한다. “세수하고 가세요” 하며 소리치는 여인들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나는 길이 열릴 때까지 참아 보려고 했지만 사람들의 땀 냄새와 장마당 구석의 오줌 찌린내와 오물냄새 때문에 더 참을 수 없었다. 하여 군인 흉내를 내며 거친 말투와 우직스런 몸동작으로 무작정 헤집고 앞으로 나갔다. 어찌나 빼곡히 몰려있었던지 내가 한번 움직일 때마다 그 모든 사람들이 다 흔들거리는 것 같았다. 마침내 땅이 보이는 곳에 선 나는 이마의 땀을 씻을 새도 없이 눈앞의 광경에 굳어지고 말았다.




시장 한 가운데 누더기 옷을 입고 뼈가 앙상한 여인이 서 있었는데 그의 목엔 다음과 같은 종이장이 걸려있었다. “내 딸을 백원에 팝니다.”




그 여인 옆에는 6살쯤 돼 보이는 여자아이가 죄진 것처럼 머리 숙이고 앉아 있었다. “이 여자가 미친 것이 아닐까?” 자식을 버리거나 남에게 주는 사례들은 많이 듣고 보아 왔어도 이런 거짓말 같은 상황은 처음 목격했기 때문이다. 자식을, 그것도 빵 한 봉지 값에 팔다니, 모여선 사람들도 나와 같은 생각으로 너나없이 저주를 퍼부어댔다.

“저 년 완전히 미쳤어”

“아무리 먹고 살기 힘들어도 자식을 어떻게 팔어? 굶어죽어도 같이 죽어야지”

“생긴 건 바람둥이처럼 매끈한게 애를 팔다니”

“세상이 흉흉하더니 요즘 별의별 놈들을 다 보겠구만”

어떤 사람이 “애 엄마가 맞긴 맞아” 하며 소리치자 한 노인이 여자애에게 물었다.




“애야, 저 여자 정말 네 엄마냐?”

그 목소리에 모두가 입을 다물고 아이의 얼굴을 주시했다. 아이가 선뜻 대답을 않자 엄마가 아니라는 대답을 듣고 싶었던지 여러 사람들이 다그치듯 다시 물었다.

“야, 네 엄마 맞어?”

“네 엄마 아니면 아니라고 말해”

“우리가 있으니깐 일없어, 어서 말해”



쭈그리고 앉아있던 아이가 마침내 비실비실 일어섰다. 삽시에 주위는 조용해졌다. 내 옆에서 자꾸 온 몸을 굵던 사람도 그 때만은 손을 까딱 안했다. 두려운 눈길로 주위를 둘러보던 여자아이는 사람들을 향해 “맞아요. 울 엄마예요” 라고 소리쳤다.

울 엄마? 그렇게 말하는 딸애를 돈 백원에 파는 어미라니. 사람들의 분노는 한 충 더해졌다.

“저런 저런, 애가 불쌍하구나”

“야 쌍년아 아이를 팔겠으면 제대로 팔아라. 백 원이 뭐니”

“개도 삼천 원인데 딸이 개 값도 안 되냐!”

“제 입도 풀칠하기 힘든 세상에 누가 돈 주고 아이를 갖다 기를 사람이 있겠다고 저 지랄이야”

“그러게나 말이지. 차라리 아이를 키워달라고 사정하면 동정이라도 받겠다”

“백원으로 부자 되겠냐 미친년아!”



그 소리들은 고함에 가까웠지만 여인은 두 눈을 내리 깔고 미동도 없었다. 그게 더 미웠는지 사람들의 욕은 더 거세져 돌이라도 던질 기세다.

누군가 “야! 할 말 있으면 어디 변명이라도 해봐. 저거 벙어리 아니야”라고 하자 이번엔 욕질보다도 벙어리라는 말들이 여기저기서 들렸다.




내 보기에도 그 여인은 정말 듣지도 못하고 말도 못하는 벙어리 같았다. 그때부터 다른 사람들도 저 여자, 저 여자라는 말 대신 저 벙어리라고 손가락질 하면서 서로 수군들 거렸다. 벙어리에게 아무리 욕을 해봤자 소용없겠다 싶었는지 누군가 이번엔 큰 소리로 아이에게 아버지가 없냐고 물었다. 또다시 시장 안은 조용해졌다. 아버지라도 있었으면 하는 하나같은 기대감에 어찌 보면 모두들 긴장한 듯싶었다. 아이는 좀 전보다 더 가냘픈 목소리로 말했다.

“아버지요? 없시요. 먹지 못해서 영양실조로 죽었....” 말끝을 흐렸다.



여기까지 맥없이 중얼거리던 아이가 갑자기 머리 들며 또렷한 음성으로 소리쳤다.

“우리 엄마 욕하지 마세요. 울 엄마 지금 암에 걸려서 죽으려고 해요.”

비명처럼 들리는 아이의 그 소리는 사람들은 머리에 돌 맞은 것 처럼 뗑 해졌다. 누구도 입을 열지 못했다. 죽음보다 이제 곧 죽어야 할 삶을 볼 때가 더 침통한 법이다. 그 여인을 보니 이 세상 마지막 시간을 보는 것 같았다. 목소리라도 가지고 있다면 모든 사연을 쏟아 놓으며 통곡이라도 해보겠는데 그렇지도 못하는 것이 오죽하랴싶어 사람들은 더더욱 처량하게 벙어리 여인을 지켜보았다. 왜 여태 그를 한 번도 동정하려고 하지 않았던가.




“내 딸을 백원에 팝니다.” 그 글만 보고 왜 사람은 보려고 하지 않았던가. 어찌 보면 그 글로서 남들에게 더 동정과 배려를 받아보려는 모성의 최후 몸부림일 수도 있다. 나는 이런 생각으로 비로소 여인과 여자애를 유심히 뜯어보았다. 엄마가 죽는다고 야단치는 딸애의 목소리에도 덤덤히 서있기만 하는 벙어리 30대 여인, 누렇게 떠 있는 얼굴은 이미 삶을 포기한 듯 아무런 표정이 없었고 뼈가 마디마디 들여다 보이는 손에는 피도 흐르지 않는 것 같았다.




옷은 그동안의 고단한 생활을 보여 주 듯 여기저기 기운 흔적이 보였는데 바느질 솜씨가 깔끔했다. 신체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손재간이 좋다는 말이 생각났다. 아이도 엄마를 닮아 미운 구석이 없었다. 갸름한 얼굴, 쌍까풀진 두 눈, 오똑한 코, 작은 입술, 이렇게 흩어보던 나는 아이의 입술 밑에 난 작은 점을 보고 흠칫했다. 내 딸애에게도 그 자리에 그런 작은 점이 있었다.




보이지 않는 곳에 점이 있어야 복이 되고 보이는 곳에 있으면 화가 된다는 동네 어르신의 말 때문에 늘 가슴에 걸렸던 딸애의 흔적이었다. 그래서 처녀애의 불행이 남의 일 같지 않았다. 나는 딸애를 먼저 보냈는데 저 애는 아빠를 먼저 잃었구나 하는 생각에 동변상련의 아픔이라 할까. 언젠가 만났던 인연 같기도 했다. 어쩌자고 혹시 내가 저 애를 키울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욕구까지 솟구쳤다.




그러나 나는 일부러 머리까지 흔들며 그 모든 생각을 말끔히 털어 버리고 싶었다. 남을 동정하기엔 내 자신이 너무도 불행한 죄인이었던 것이다. 남들도 나와 비슷한 생각들을 해보는 것인지 한마디 씩 동정하기 시작했다.




“저 여자 죽으면 애는 정말 어찌 사노”

“엄마도 살고 애도 살면 얼마나 좋을까”

“친척 중에 아이를 돌볼 사람이 없을까?”

“에구 저거 불쌍해서 어쩌노”



그들 중 장사꾼으로 보이는 사람 하나가 모녀 앞으로 다가갔다. 장사꾼은 5백원을 꺼내 여인의 손에 쥐여주고 대신 목에 걸린 종이장을 벗겨내며 말했다.

“아주머니, 요즘 누구나 먹고 살기 힘든데 남의 아이를 돈 주고 데려다 키우겠다는 사람이 없어요. 그러니 이 돈 가지고 가시우”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 여기저기서 공감하는 소리들이 연발했다.

“맞아요. 그 사람 말 들어요.”

“어서 그렇게 해요. 여기 나와 있어야 병이나 더 심해져요. 엄마가 살아야 아이도 살지요”

“날도 찬데 아이 데리고 어서 가요.”

나는 그 말들이 고마웠다. 그리고 그 순간 만큼은 여인의 병을 고칠 수 있는 약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그 소리들을 못 들어서인지 아니면 듣고 하는 행동인지 벙어리 여인은 장사꾼의 손에 돈을 돌려주고 글을 다시 목에 걸었다.




오백원보다 애를 부양해주는 게 더 고맙겠다는 마지막 사정 같기도 하고 자기는 그 돈에 살아날 목숨이 아니라는 의미 같기도 했다. 이때 갑자기 “비켜! 비켜!” 하는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사람들을 마구 헤치며 나타나는 사람이 있었다. 안전원(경찰)이었다. 누구의 신고를 받고 왔는지 목적하고 온 듯 여인에게로 곧장 다가와 다짜고짜로 어깨를 툭 툭 쳤다.




“이 년이 미치지 않았어! 여기가 사람을 노예처럼 사고파는 썩어빠진 자본주인 줄 알어? 당장 없어지지 못해!”

그러면서 여인의 목에서 종이장까지 획 잡아채어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그 한 조각 한 조각이 땅 바닥에 뿌려질 때마다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동정이 증오로 바뀌는 군중심리가 쌓여져 사람들이 폭발하기 시작했다.



“여 이 사람아. 그 여인 중병 걸린 사람인데 사정이나 좀 들어보고 그 야단을 치지”

숱한 사람이 모여있어 누가 그런 소리를 했는지 잡아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자 여기저기서도 비난하는 소리들이 터졌다. 그들을 모조리 잡아갈 듯한 기세로 안전원이 사방을 일일이 둘러보자 그 면상을 쥐여 박기라도 하듯 이번엔 누군가 야유조로 소리쳤다.



“ 저런 새끼는 100원에 내놔도 냄새나서 사가는 사람이 없을게다”

순간 시장 안은 와! 하는 웃음판으로 변했다. 분노로 얼굴이 험하게 이그러진 안전원은 그 자리에 더는 서있을 수 없었던지 벙어리 여인에게 달려들어 분풀이를 하기 시작했다.




“가자. 인간중심의 우리식 사회주의에서 이런 짓은 공화국을 모독하는 죄야. 어디 네 새끼까지 없어지고 싶어서 그래?.”

팔소매까지 걷어 올리고 안전원이 여인을 무섭게 잡아끌자 아이가 울음 절반 애걸 절반으로 사정하기 시작했다.




“아저씨. 우리 엄마 아파서 그래요. 제발 놔주세요. 엄마 가자. 엄마 죽을 때 나도 같이 죽으면 되잖어. 나 혼자 안살거야”

엄마랑 같이 죽겠다는 아이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나는 아내와 딸의 죽음을 보는 착각과 함께 온 몸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나만의 불행이 아니라 이 나라 인민이라면 누구에게나 다 있는 불행, 이런 불행의 나라를 금방 저 놈은 인간중심의 사회라고 했다.




노예제도 때도 사람은 사람 값으로 당당히 팔렸다. 그러나 백원에도 팔릴 수 없는 노예보다 못한 목숨들이여서 저 놈은 저렇게 지금 마구 대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모녀에 대한 동정도 동정이지만 그 놈의 행위가 얄밉기도 하여 벙어리 여인에게 다가가며 큰 소리쳤다




“이보시오. 내가 아이를 데리고 가겠소. 나에게 돈 백원이 있소”

내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뭐야!?” 하면서 나에게 머리를 돌리던 안전원은 나의 군복을 보고 뚝 굳어졌다. 안전원도 군인은 두려운 존재여서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여인의 손에 돈을 쥐어주며 나는 간절히 말했다.

“이 백원으로 당신 딸을 산다기보다 당신 모성애를 사는 것이니 그렇게 아시오”




그리고 그 말을 시각적으로 확인시키기 위해 딸애의 여린 손목을 확신있게 잡았다. 내가 당장 데려 가려는 줄 알았는지 여인이 반사적으로 내 팔을 성큼 잡고 안절부절 못하다가 갑자기 사람들을 밀어내며 어디론가 급히 갈려고 하였다. 처음 그의 행동을 이해 못하던 사람들이 이내 그에게 길을 열어주었다.




나도 벙어리 여인의 돌발적인 행동이 몹시 의문스러웠다. 내가 마음을 다시 고쳐 먹을까봐 아이를 버리고 서둘러 달아나는 것인가. 정말 그렇다면 그 여인은 너무 어리석다. 혹시 어리석어서 제 아이를 정말로 백원에 팔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그 돈으로 양잿물이라도 사서 자살이라도 하려는가?. 나는 같은 혈육의 생각을 읽어보기 위해서 아이의 얼굴을 들여다 보았다. 아이도 당황한 듯 싶었다. 그러자 내가 너무도 큰 결심을 쉽게 한게 아닌가 싶어 조금 긴장 되었다.




결국 사람들이 붐비는 그 속에서 모녀는 사라졌다. 진짜 암에 걸렸는지 빵 한조각을 얻기 위해 딸을 이용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북한도 이젠 갈데까지 다 갔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이 무리로 굶어죽으면서 인육까지 먹었다는 소문이 돌고 장마당에서도 팔렸다는 끔찍한 이야기를 들은 적은 있지만 살아있는 사람을 팔겠다고 나선 것은 처음 목격했다.

하지만 다시 내 자신이 너무 초라해 졌다. 차라리 안해와 딸을 굶겨죽인 나보다는 훨씬 용감한 사람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내가 저런 것을 목격하면서 놀랄 처지가 아니지 않는가?

그래 나처럼 가족을 굶겨죽인 사람이 한두명이 아니지...다 잘못된 사회 때문이지 어찌 나 때문에 그렇게 됐겠는가 생각하면서도 못난 아버지라는 사실에 살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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