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상의 꿈과 희망』이 이루어 지는 세계로! 안녕하세요! 대림대학 경영정보계열 겸임교수 정상덕입니다. 제 블로그를 찾아주신 여러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저는 지금 기업체강의(산업체강의)를 주로 하고 있고요, 대림대학 경영정보계열에서『회계학』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저는 『현대인재개발원』교수실에서 "수석교수"로 약 4년간(1995.3.25 ~ 1998.12.31) 근무한바 있으며, 대림대학에서 약 17년째(1993.8.23
2012년 6월 22일 금요일
2012년 2월 18일 토요일
구한말 빼닮은 한반도
구한말 빼닮은 한반도
총선 앞둔 대한민국 표류하나?
명사칼럼 -
김동길 박사
1928년 평남 맹산 출생 연세대 부총장, 조선일보 논설
고문, 국회의원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태평양시대위원회 이사장으로
있다
방황하는 한반도19세기 말,
단명했던 대한제국이 마지막 숨을 몰아쉬던 그 무렵, 한반도에 벌어진 사태가 오늘과 비슷하다 하겠습니다. 청나라의 힘을 끌어들이려는 세력,
아라사(러시아)와 친근하기를 갈망하는 세력, 일본을 본받아야 한다고 믿고 있는 세력, 미국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세력들이 요 좁은
땅에서 서로 치고 받고 할퀴니, 어리둥절하고 이 광경을 바라만 보고 있었던 백성들의 신세만 난처하였습니다. 당시의 지도층은 ‘주체성’을 상실하고
방황‧표류하고 있었습니다.오늘 한반도의 현실이 19세기 말, 20세기 초의 한국을 연상케 합니다. 북은 일사불란하게
돌진하고 있는 듯이 보이지만 속내는 그렇지 못할 겁니다. 상식적으로 판단할 때, 70년이 가깝도록 2천만이 넘는 그 많은 민중을 헐벗게 굶주리게
해 놓고 계속 다스리기도 힘에 겨운 일임에 틀림이 없고, 정권 하나를 지키기 위해 그 큰돈과 시간과 정력을 쏟아서 만든 핵무기만 끼고 있다는
것도 웃기는 일입니다. “중국 사람들은 저렇게 잘 사는데 우리는 왜 이렇게 가난한가”하는 생각이 북의 인민공화국의 지도층 가슴에는 전혀 떠오르지
않겠습니까.2012년의 총선‧대선을 앞둔 대한민국은 어딜 향해 가는 것인가. 방향이 제대로 설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방황이
불가피하고 혼란과 무질서도 막을 길이 없습니다. 한반도는 100년 전처럼 또 한 번 깡그리 망할 수밖에 없는 겁니까.
2012년 1월 31일 화요일
필리핀 여행을 준비하면서, 필리핀 여행을 즐기면서, 그리고 여행을 마치고서 우리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필리핀 사람들은
필리핀 여행을 준비하면서, 필리핀 여행을 즐기면서, 그리고 여행을 마치고서 우리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필리핀 사람들은
바바에의 모습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필리핀 현지에는 우리가 여행 중에 본 바바에의 숫자와 똑같은
랄라께(바바에의 상대적인
말로 필리핀 남자를 뜻함. 이하 명칭을 피노이로 통일.)가 있었다. 거리의 호객꾼이나 식당 종업원으로만
기억된 피노이. 이들은
과연 필리핀을 좋아하는 우리들에게 어떤 존재일까? 그들 말대로 단순히 친구인가, 아니면 우리에게 매우
귀찮은 존재인가?
필리피노,
친구인가? 귀찮은 존재인가?
우리는 필리핀 여행을 즐기면서 필리피노(이하 피노이)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본 적이 드물다. 그도 그럴
것이 바바에만 생각하기도
벅차고 부족한 시간인데 피노이까지 생각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런데 이 피노이라는 존재는 우리가
여행하고 또는 필리핀을
즐기면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하는 특별한 존재다. 이들의 존재를 무시했다간 뜻밖의 곤욕을 치루게
된다.
예전에 썼던 어느 글에서 이상한 퀴즈를 하나 낸 적이 있다. 바바에와 사랑에 빠져 연인 관계를 지속하려
하거나 혹은 결혼해서
가정을 꾸린다고 할 때 상대가 필리피나이기 때문에 가장 문제가 되는 것 한 가지를 말하라는 뜬 구름
잡는 식의 문제였다.
이런 막연한 질문에 똑 부러지는 정답이 어디 있겠냐만, 내가 생각한 정답은 ‘필리피노’라는 한
단어였다.
여기에 많은 회원들이 댓글을 통해 알듯말듯한 이 현상에 대한 궁금증을 드러냈었다. 어떻게 보면
피노이와 우리는 같은 시장을
놓고 싸우는 경쟁자일 수 있다. 따라서 자세히 알아 두어야 할 필요도 있는 셈이다.
아니, 반드시 알아두어야 하는 중요한 부분이다.
* * *
피노이란 어떤 사람들인가? 아무리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고 하지만 공통적인 민족성이 있고 대표적인
성향이 있기 마련이다.
그런 개념으로 볼 때 피노이의 성향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바바에 보다 더 이해하기 힘든 성격을 가지고
있다.
설령 이해는 하더라도 용납이 되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고 표현하는 것이 옳다. 다시 위의 전제로
돌아가자.
한 바바에와 사랑에 빠져 좋은 관계, 심지어 결혼까지 생각하고 있는 데 이의 가장 골치 아픈 요소로
등장한 피노이. 이들이 과연
어떻게 등장할까? 피노이들이 여자에게 찝적대는, 시쳇말로 ‘들이대는’ 방식과 노력은 감동적이고
가상하다는 생각을 넘어서
외계인 수준에 가깝다. 시도 때도 없고 남녀는 있어도 노소는 없으며, 여기에는 모든 수단과 방법이
가리지 않고 등장한다.
매일 꽃을 사들고 바바에 집 앞에 나타나는가 하면 빠짐없이 문자 메시지를 보내고, 심지어 이미
남자친구나 애인이 있는 바바에
에게는 이간질도 서슴지 않는다. 목적은 오직 ‘쏙쏙’이며, 이것을 위해 모든 짓을 가리지 않는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이들이 이 지구상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이란 도대체 어떤
사람들일까? 호전적이거나 사이코패스가 아니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은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들이다.
이 세상에 부끄러움을 못 느끼는 사람들처럼 무서운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바로 피노이들이 그렇다.
여자에게 들이대는 상황에 있어 어떤 부끄러움도, 어떤 자존심도 이들에게는 사치일 뿐이다. 심지어 도덕과
윤리도 없다.
이미 애인이 있는 바바에든, 이미 결혼해서 잘 살고 있는 바바에든 가리지 않는다.
작은 예를 들어보자.
어찌어찌 알게 된 바바에, 이미 결혼해서 잘 살고 있는 바바에를 마음에 두고 주변에 있는 피노이는
시도때도 없이 들이댄다.
어쩌다 얘기를 나눌 기회가 생기면 들이대고, 그래도 안 통한다 싶으면 이간질을 시작한다.
‘네 남편 어제 클럽에서 봤다. 여자들하고 놀더라.’ 이런 식이다. 바바에 생각에 남편이 어제 늦게
들어온 것은 알지만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는 확실히 알고 있다. 그러니 그러려니 한다.며칠 뒤 피노이는 바바에에게 또 같은
얘기를 한다. 뿐만 아니라
계속 끊임없이 반복한다. 어떤 경우엔 남편이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는 경우도 있다.
바바에는 답답해진다.
괜히 남편에게 이것저것 캐물으며 바가지를 긁는다. 남편은 차츰 짜증을 낸다. 바바에는 섭섭해진다. 이럴
때도 여지없이
피노이는 들이대고 있다. 그런 일이 반복되다가 바바에가 마음이 허전할 무렵, 우연히 연락된 그
피노이에게 자연스럽게 접수(?)
된다. 그 피노이와는 우연히 연락된 것이 아니라 그동안 시도때도 없이 들이댔으니 당연히 그런 기회도
생기는 것이다.
그리고 그냥 그 관계가 시들해지면 그걸로 끝이다. 어차피 처음부터 그것이 목적이었으니까.
남편이 뻐젓이 있는 유부녀에게도 이러니 처녀들에게는 말할 것도 없는 일이다. 이 글을 읽는 회원들은 이
표현이 조금 놀랍거나
혹은 지나친, 극단적인 상황이라고 생각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일단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필리핀 이란 나라는 세계에서 싱글맘(미혼모)이 가장 많은 나라이다.
가장 많다고 할 수는 없다 해도 필리핀에 싱글맘이 분명히 많은 것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 싱글맘들의 파트너는 누구였을까? 미국인? 유럽인? 아니면 코리안?
불행인지 다행인지, 한국인이 파트너인 싱글맘은 많지 않다. 그외 외국인도 많은 수치는 아니다.
필리핀 전국의 싱글맘을 대상으로 본다면 그 수치는 극히 미미한 수치다. 결국 대부분의 싱글맘의 파트너는
외국인이 아니라
내국인, 즉 피노이라는 얘기다. 이것은 어렵지 않게 금방 확인할 수 있는 현실이다.
* * *
모두가 알겠지만 필리핀 사람들의 꿈은 외국으로 가서 사는 것이다. 이미 국내에서의 미래는 포기한
상태이며 그나마 자신들의
미래에 희망을 걸고 있는 유일한 돌파구는 바로 ‘외국’이다. 필리핀 사람들 중 적극적인 사람은 자신이
직접 외국으로 가서 일을
하거나 가정을 꾸리고 살려는 노력을 하고, 소극적인 사람들은 외국인 배우자를 만나 인생을 고치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 소극적인 방법도 여자에 국한된 얘기다. 여자들이란 남자와 외국인 관광객을 만날 유리한 환경이
있고,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몸을 팔면서라도 인연을 맺을 수가 있다. 그러나 피노이들은 남자라는 특성상 그것도 힘들다.
그럼 이들은 어떻게 그런 꿈을 비슷하게나마 실현하려고 할까? 정답은 외국인 남자와 사귀거나 도움을 받는
바바에를 꼬시는
것이다. 이들에게는 최고의 타겟이 된다.
앞으로 예시하는 사례들에 대해서는 진위 여부를 따지지 말고 각자 읽는 사람이 알고 있는 필리핀 지식의
수준으로 이해하자.
이 얘기들은 매우 과장되었거나 심지어 내가 지어낸 얘기일 수도 있다.
<사례1>
외국인에게 월 100만원씩 서포트를 받는 바바에A가 있다고 치자. 이 바바에에게는 반드시 필리핀
남자친구인 피노이B가 있다.
그 피노이B는 바바에A로부터 한달에 약 50만원의 서포트를 받고 있다. 한마디로 삥뜯어간다.
피노이B가 집으로 돌아가면 한 명의 바바에C가 있다. 이 바바에C에게 한달에 25만원의 비용을 사용하고
있다.
그 바바에C에게는 또 다른 피노이D가 한 명 기다리고 있다. 그 피노이D는 바바에C에게 매월 12만원을
삥뜯어간다.
이것이 한 사람의 외국인 관광객이 바바에에게 서포트했을 때 일어나는 현지의 상황이다.
과연 이것이 사실일까 아닐까? 그 판단은 읽는 사람들의 몫이다. 조금 더 막장 드라마를 연출해보자.
누차 말하지만 이러한 사례들과 이것에 대한 판단을 읽는 사람들의 몫이다.
나는 열심히 공상소설을 쓰고 있을 뿐이다.
<사례2>
젊고 건장한 피노이A가 있다. 마닐라의 한 콘도(우리의 아파트)에서 유럽의 한 중년여성과 동거하고
있다.
이른바 계약식 동거다. 피노이A는 동거하면서 한달에 얼마의 돈을 받는다.
그 바로 옆집에는 한 서양인과 동거하는 바바에B가 있다. 이 바바에B 역시 동거의 댓가로 한달의 일정
금액을 서포트 받는다.
여기까지야 조금이라도 필리핀에 대해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이야기에 신뢰는 가지 않더라도 단순히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피노이A와 바바에B가 부부라면? 아무렇지도 않게 이웃집에서 각자 소포트를 받으면
살아가고 있다면?
그렇다면 이야기의 성격은 180도 달라질 것이다. 필리핀에는 이런 일이 아무렇지도 않게 발생하는
곳이다.
* * *
예전에 어떤 회원의 게시물에서 한국에 있는 바바에와 좋은 관계를 이어가고 싶다는 글이 있었다.
나는 댓글을 통해 ‘한국에 있는 바바에는 이미 바바에가 아니다’라고 의견을 표현했고, 일부 회원들이 그
이유를 알고 싶다는
댓글을 또 남겼다. 필리핀 현지에서 볼 때는 나름대로 마간다였지만 막상 한국에 바바에가 오면 상대적으로
초라하고 왜소해
보이게 마련이다. 그리고 한국에 거주하고 몇 년이 지나면 우리가 알고 있던 바바에의 순수함은 사라지고
한국인과 비슷한
감성을 가지게 된다. 돈에 대한 단위도 달라져 택시비 100페소에 고마움을 느끼는 그런 바바에는 이미
안드로메다로 사라진
뒤다. 결국 한국에 살고 있는 바바에는 우리가 알고 있는 그 바바에가 아니라는 말이다.
하지만 한국에 있는 바바에와 개인적으로 인연을 만들려고 하기 힘든 가장 큰 그 이유도 바로 이것,
피노이 때문이다.
현재 우리나라에 시집와서 살고 있는 많은 바바에들이 있다. 워낙 낙천적이고 순종적인 성격으로 인해 좋은
한국인으로 살아갈
수 있을 법도 한데 아주 중요한 걸림돌이 하나 있으니 그것 또한 바로 피노이 때문이다.
피노이들의 ‘들이대기’는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다. 그 바바에가 기혼자이든 미혼이든
그런 것은 따지지
않는다. 그냥 들이댄다. 앞서 설명했듯 집요하게 들이댄다. 온갖 이간질과 거짓말도 서슴지 않는다.
부끄러움이란 전혀 느낄 수도 없고 자존심도 없다. 바바에가 조금만 화를 내면 그곳이 길거리든 백화점이든
그 자리에 무릎을
꿇고 사과한다. 한국사람에게는 전혀 느낄 수 없는 이런 상대로 인해 바바에는 피노이에게 쉽게 넘어간다.
그러나 역시 피노이의 목적은 딱 한가지뿐이다. 쏙쏙이다. 바바에의 인생을 책임지고 평생 동반자로 인생을
살겠다는 숭고한
의미 따위는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도 없다. 한국에 시집온 바바에가 한국에 살고 있는 피노이를 만날 수
있는 기회는 재한
필리핀인 행사나 또는 일요일의 교회다. 여기서 대부분의 '들이대는' 일들이 벌어진다. 바로 이 이유로
인해 나는 한국 사람들이
바바에와 결혼하겠다는 것을 극구 반대한다. 시도때도 없이 들이대는 피노이가 큰 문제로 보이지만, 사실
그 보다 더 큰 문제는
그런 얄팍한 수작에 너무나 쉽게 넘어가버리는 바바에가 더 큰 문제다.
인생의 동반자로 생각하기에는 그 심지가 너무나 얕다.
* * *
집요하고 뻔뻔한 피노이에 대해 몇 가지 특성을 설명했다.
물론 이것이 검증된 사실인지, 지나친 비약인지에 대해서는 누구도 확신할 수 없다. 다만 우리가 바바에와
친구 이상의 깊은
인연을 맺으려 할 때 반드시 알아두어야 하는 중요한 변수라는 점 만큼은 확실하다.
다른 막장 드라마를 한 편 선보인다.
이게 내가 지어낸 공상소설이든 어디서 주워들은 이야기든 그건 중요하지 않다.
<사례3>
어느 한국 관광객이 있다고 치자. 필리핀 현지에서 만난 바바에A와 연인 관계가 되었다. 바바에A는 업소
바바에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순수 민간인도 아닌, 이른바 예비군이다. 서로 친해지게 되어 같이 잘 지내던
어느날, 바바에A의 집을 방문할 것을
제안했다. 몇 번의 거절 끝에 바바에A 의 집 방문을 허락했고, 이후 적당한 날에 바바에A의 집을
방문했다.
마닐라에서 두어 시간 떨어진 외곽지역에 자리잡은 바바에A의 집은 전형적인 필리핀 서민의 가정으로, 작은
집에 많은 식구들이
옹기종기 모여살고 있었다. 바바에의 부모, 할머니, 오빠, 동생, 까신 및 이웃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식사를 마친 뒤 해가 기울자
하룻밤 머물고 가기로 했다. 집은 좁고 방은 모자라고... 결국 한방에서 식구들과 함께 하룻밤을
지낸다. 나름대로 손님이라고
한쪽 구석에 마치 신방 꾸미듯 바바에A와 같이 잘 공간을 만들어준 식구들. 한방에 모두 모여 있으니
얌전히(?) 하룻밤을 지내고.
필리핀의 시골정서에 흠뻑 취해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고 귀국한다. 여기까지라면 매우 정상적이고 또
아름다운 장면이다.
그런데 이 이야기에 또 다른 변수가 등장한다.
반갑게 소개하고 악수를 나눈 오빠라는 인물은 오빠가 아니라 실제 바바에A의 남편이다. 여기서부터 얘기가
복잡해진다.
너털웃음을 지으며 인사를 나눈 바로 그 피노이 오빠, 한방에서 바바에A를 꼭 껴안고 잠을 잘 때 한쪽
구석에서 흐뭇한 웃음을
짓고 있는 그 피노이 오빠. 바로 그 피노이 오빠가 친 오빠가 아니고 남편이라면? 이야 말로 환장하고
뒤집어 질 일 아닌가?
우리식 정서로는 상상도 하기 힘든, 일부러 지어내기도 힘든 상황 아닌가?
이 <사례3>에는 세 명의 피노이가 등장한다.
오빠로 알았던 남편 피노이, 바바에A의 아빠, 바바에A의 남동생이다. 이 이야기가 상상 속 소설이
아니라 사실이라면
피노이들이 어떤 인물인지, 어떤 환경에서 자라는 지 가늠이 가능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한 가족이 모두
입을 맞추고 외국인
한 사람을 속이는 것, 이것이 가능한 나라가 필리핀이다. 만약 당신이 알고 지내는, 애인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바바에에게
가끔 전화오는 피노이가 한 명 있다면? 그런데 바바에는 단지 귀찮게 하는 사람일 뿐이라고
말한다면?
당신은 그 바바에를 포기하는 게 좋을 것이다. 그 피노이는 당신의 라이벌이 아니다. 당신이 이길 수
있는 부분은 돈 밖에 없다.
돈으로 이길려고 해봐야 두 사람 배만 불러주게 될 뿐이니까. 한국 사람이 바바에를 두고 피노이와
경쟁한다면 절대로 이길 수
없다. 절대로...... 자존심 상하겠지만 이건 사실이다.
바로 그 자존심 때문에 한국 사람이 이길 수 없는 것이니까.
* * *
피노이를 설명하기 위해 세 가지 사례를 들었다. 그 사례에는 다양한 피노이가 등장한다.
세 가지 사례를 읽고 그 반응은 읽은 사람들 모두 각각 다를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듣고 놀라는 사람도
있을 테고
극단적인 사례에 불과하다고 쪽지로 항의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가 하면 있을 수도 있는 일이라고
고개를 끄덕일 사람도
있을 것이고, 평범한 일이라 대수롭지 않게 여길 사람도 있을 것이다. 결론을 말할 시간이다.
필리핀 여행에 있어서, 특히 바바에와의 인연과 추억에 대해서 가장 큰 걸림돌이 되는 것은 피노이이다.
그 집요한 들이대기와 부끄러움도 모르는 작업에 대해 반드시 알아두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화가 나는 것은
그러한 수작에 손쉽게 넘어가는 바바에들이다.그로 인해 나는 개인적으로 바바에와 각별한 인연을 만들려
하거나 결혼을
생각한다면 적극적으로 말린다. 꿈도 꾸지 말라고 주장한다. 필리핀에 대한 나의 모든 경험을 걸고 말리고
싶다.
잘 알아야 잘 즐길 수 있다. 물론 아닌 바바에도 분명히 있다. 그러나 들이대는 피노이도 분명히 있다.
훨씬 많다.
이 글을 오래전부터 쓰고 싶었지만 한 가지 걸림돌이 있었다.
바바에와 인연을 맺고 있는 사람, 또는 이미 바바에와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고 행복하게 살고 있는
한국사람들에 대한 걱정과
배려 때문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하면 이 세상에는 알아야 할 것이 있고, 알고 나서 조심해야 할
것이 있다는 생각이다.
기분이 나쁠지언정 알아둬서 나쁠 것은 없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이 문제로 고민하다가 바바에를 배우자로
삼아 살아가는
한국사람들이 어떤 식으로 살아가야 하는 지 우연히 그 정답을 찾았다.
필리핀 바바에와 만나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살고 있는 한 사람의 말에서 나는 그 정답을 찾은 셈이다.
그의 말을 그대로
인용한다. 바바에와 만나 가정을 꾸리고 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잘 나타나 있다. “바바에를 배우자로
데리고 산다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매일 매일, 매 시간마다, 매 분마다, 매 순간마다 같이 살고 있는 바바에 숨소리의
미세한 차이 마저도
인식할 수 있을 정도가 되어야 같이 살 수 있습니다.”
바바에와 필리핀....
깊게 들어가면 단점만 보인다.
필리핀 사람들은
바바에의 모습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필리핀 현지에는 우리가 여행 중에 본 바바에의 숫자와 똑같은
랄라께(바바에의 상대적인
말로 필리핀 남자를 뜻함. 이하 명칭을 피노이로 통일.)가 있었다. 거리의 호객꾼이나 식당 종업원으로만
기억된 피노이. 이들은
과연 필리핀을 좋아하는 우리들에게 어떤 존재일까? 그들 말대로 단순히 친구인가, 아니면 우리에게 매우
귀찮은 존재인가?
필리피노,
친구인가? 귀찮은 존재인가?
우리는 필리핀 여행을 즐기면서 필리피노(이하 피노이)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본 적이 드물다. 그도 그럴
것이 바바에만 생각하기도
벅차고 부족한 시간인데 피노이까지 생각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런데 이 피노이라는 존재는 우리가
여행하고 또는 필리핀을
즐기면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하는 특별한 존재다. 이들의 존재를 무시했다간 뜻밖의 곤욕을 치루게
된다.
예전에 썼던 어느 글에서 이상한 퀴즈를 하나 낸 적이 있다. 바바에와 사랑에 빠져 연인 관계를 지속하려
하거나 혹은 결혼해서
가정을 꾸린다고 할 때 상대가 필리피나이기 때문에 가장 문제가 되는 것 한 가지를 말하라는 뜬 구름
잡는 식의 문제였다.
이런 막연한 질문에 똑 부러지는 정답이 어디 있겠냐만, 내가 생각한 정답은 ‘필리피노’라는 한
단어였다.
여기에 많은 회원들이 댓글을 통해 알듯말듯한 이 현상에 대한 궁금증을 드러냈었다. 어떻게 보면
피노이와 우리는 같은 시장을
놓고 싸우는 경쟁자일 수 있다. 따라서 자세히 알아 두어야 할 필요도 있는 셈이다.
아니, 반드시 알아두어야 하는 중요한 부분이다.
* * *
피노이란 어떤 사람들인가? 아무리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고 하지만 공통적인 민족성이 있고 대표적인
성향이 있기 마련이다.
그런 개념으로 볼 때 피노이의 성향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바바에 보다 더 이해하기 힘든 성격을 가지고
있다.
설령 이해는 하더라도 용납이 되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고 표현하는 것이 옳다. 다시 위의 전제로
돌아가자.
한 바바에와 사랑에 빠져 좋은 관계, 심지어 결혼까지 생각하고 있는 데 이의 가장 골치 아픈 요소로
등장한 피노이. 이들이 과연
어떻게 등장할까? 피노이들이 여자에게 찝적대는, 시쳇말로 ‘들이대는’ 방식과 노력은 감동적이고
가상하다는 생각을 넘어서
외계인 수준에 가깝다. 시도 때도 없고 남녀는 있어도 노소는 없으며, 여기에는 모든 수단과 방법이
가리지 않고 등장한다.
매일 꽃을 사들고 바바에 집 앞에 나타나는가 하면 빠짐없이 문자 메시지를 보내고, 심지어 이미
남자친구나 애인이 있는 바바에
에게는 이간질도 서슴지 않는다. 목적은 오직 ‘쏙쏙’이며, 이것을 위해 모든 짓을 가리지 않는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이들이 이 지구상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이란 도대체 어떤
사람들일까? 호전적이거나 사이코패스가 아니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은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들이다.
이 세상에 부끄러움을 못 느끼는 사람들처럼 무서운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바로 피노이들이 그렇다.
여자에게 들이대는 상황에 있어 어떤 부끄러움도, 어떤 자존심도 이들에게는 사치일 뿐이다. 심지어 도덕과
윤리도 없다.
이미 애인이 있는 바바에든, 이미 결혼해서 잘 살고 있는 바바에든 가리지 않는다.
작은 예를 들어보자.
어찌어찌 알게 된 바바에, 이미 결혼해서 잘 살고 있는 바바에를 마음에 두고 주변에 있는 피노이는
시도때도 없이 들이댄다.
어쩌다 얘기를 나눌 기회가 생기면 들이대고, 그래도 안 통한다 싶으면 이간질을 시작한다.
‘네 남편 어제 클럽에서 봤다. 여자들하고 놀더라.’ 이런 식이다. 바바에 생각에 남편이 어제 늦게
들어온 것은 알지만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는 확실히 알고 있다. 그러니 그러려니 한다.며칠 뒤 피노이는 바바에에게 또 같은
얘기를 한다. 뿐만 아니라
계속 끊임없이 반복한다. 어떤 경우엔 남편이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는 경우도 있다.
바바에는 답답해진다.
괜히 남편에게 이것저것 캐물으며 바가지를 긁는다. 남편은 차츰 짜증을 낸다. 바바에는 섭섭해진다. 이럴
때도 여지없이
피노이는 들이대고 있다. 그런 일이 반복되다가 바바에가 마음이 허전할 무렵, 우연히 연락된 그
피노이에게 자연스럽게 접수(?)
된다. 그 피노이와는 우연히 연락된 것이 아니라 그동안 시도때도 없이 들이댔으니 당연히 그런 기회도
생기는 것이다.
그리고 그냥 그 관계가 시들해지면 그걸로 끝이다. 어차피 처음부터 그것이 목적이었으니까.
남편이 뻐젓이 있는 유부녀에게도 이러니 처녀들에게는 말할 것도 없는 일이다. 이 글을 읽는 회원들은 이
표현이 조금 놀랍거나
혹은 지나친, 극단적인 상황이라고 생각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일단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필리핀 이란 나라는 세계에서 싱글맘(미혼모)이 가장 많은 나라이다.
가장 많다고 할 수는 없다 해도 필리핀에 싱글맘이 분명히 많은 것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 싱글맘들의 파트너는 누구였을까? 미국인? 유럽인? 아니면 코리안?
불행인지 다행인지, 한국인이 파트너인 싱글맘은 많지 않다. 그외 외국인도 많은 수치는 아니다.
필리핀 전국의 싱글맘을 대상으로 본다면 그 수치는 극히 미미한 수치다. 결국 대부분의 싱글맘의 파트너는
외국인이 아니라
내국인, 즉 피노이라는 얘기다. 이것은 어렵지 않게 금방 확인할 수 있는 현실이다.
* * *
모두가 알겠지만 필리핀 사람들의 꿈은 외국으로 가서 사는 것이다. 이미 국내에서의 미래는 포기한
상태이며 그나마 자신들의
미래에 희망을 걸고 있는 유일한 돌파구는 바로 ‘외국’이다. 필리핀 사람들 중 적극적인 사람은 자신이
직접 외국으로 가서 일을
하거나 가정을 꾸리고 살려는 노력을 하고, 소극적인 사람들은 외국인 배우자를 만나 인생을 고치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 소극적인 방법도 여자에 국한된 얘기다. 여자들이란 남자와 외국인 관광객을 만날 유리한 환경이
있고,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몸을 팔면서라도 인연을 맺을 수가 있다. 그러나 피노이들은 남자라는 특성상 그것도 힘들다.
그럼 이들은 어떻게 그런 꿈을 비슷하게나마 실현하려고 할까? 정답은 외국인 남자와 사귀거나 도움을 받는
바바에를 꼬시는
것이다. 이들에게는 최고의 타겟이 된다.
앞으로 예시하는 사례들에 대해서는 진위 여부를 따지지 말고 각자 읽는 사람이 알고 있는 필리핀 지식의
수준으로 이해하자.
이 얘기들은 매우 과장되었거나 심지어 내가 지어낸 얘기일 수도 있다.
<사례1>
외국인에게 월 100만원씩 서포트를 받는 바바에A가 있다고 치자. 이 바바에에게는 반드시 필리핀
남자친구인 피노이B가 있다.
그 피노이B는 바바에A로부터 한달에 약 50만원의 서포트를 받고 있다. 한마디로 삥뜯어간다.
피노이B가 집으로 돌아가면 한 명의 바바에C가 있다. 이 바바에C에게 한달에 25만원의 비용을 사용하고
있다.
그 바바에C에게는 또 다른 피노이D가 한 명 기다리고 있다. 그 피노이D는 바바에C에게 매월 12만원을
삥뜯어간다.
이것이 한 사람의 외국인 관광객이 바바에에게 서포트했을 때 일어나는 현지의 상황이다.
과연 이것이 사실일까 아닐까? 그 판단은 읽는 사람들의 몫이다. 조금 더 막장 드라마를 연출해보자.
누차 말하지만 이러한 사례들과 이것에 대한 판단을 읽는 사람들의 몫이다.
나는 열심히 공상소설을 쓰고 있을 뿐이다.
<사례2>
젊고 건장한 피노이A가 있다. 마닐라의 한 콘도(우리의 아파트)에서 유럽의 한 중년여성과 동거하고
있다.
이른바 계약식 동거다. 피노이A는 동거하면서 한달에 얼마의 돈을 받는다.
그 바로 옆집에는 한 서양인과 동거하는 바바에B가 있다. 이 바바에B 역시 동거의 댓가로 한달의 일정
금액을 서포트 받는다.
여기까지야 조금이라도 필리핀에 대해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이야기에 신뢰는 가지 않더라도 단순히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피노이A와 바바에B가 부부라면? 아무렇지도 않게 이웃집에서 각자 소포트를 받으면
살아가고 있다면?
그렇다면 이야기의 성격은 180도 달라질 것이다. 필리핀에는 이런 일이 아무렇지도 않게 발생하는
곳이다.
* * *
예전에 어떤 회원의 게시물에서 한국에 있는 바바에와 좋은 관계를 이어가고 싶다는 글이 있었다.
나는 댓글을 통해 ‘한국에 있는 바바에는 이미 바바에가 아니다’라고 의견을 표현했고, 일부 회원들이 그
이유를 알고 싶다는
댓글을 또 남겼다. 필리핀 현지에서 볼 때는 나름대로 마간다였지만 막상 한국에 바바에가 오면 상대적으로
초라하고 왜소해
보이게 마련이다. 그리고 한국에 거주하고 몇 년이 지나면 우리가 알고 있던 바바에의 순수함은 사라지고
한국인과 비슷한
감성을 가지게 된다. 돈에 대한 단위도 달라져 택시비 100페소에 고마움을 느끼는 그런 바바에는 이미
안드로메다로 사라진
뒤다. 결국 한국에 살고 있는 바바에는 우리가 알고 있는 그 바바에가 아니라는 말이다.
하지만 한국에 있는 바바에와 개인적으로 인연을 만들려고 하기 힘든 가장 큰 그 이유도 바로 이것,
피노이 때문이다.
현재 우리나라에 시집와서 살고 있는 많은 바바에들이 있다. 워낙 낙천적이고 순종적인 성격으로 인해 좋은
한국인으로 살아갈
수 있을 법도 한데 아주 중요한 걸림돌이 하나 있으니 그것 또한 바로 피노이 때문이다.
피노이들의 ‘들이대기’는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다. 그 바바에가 기혼자이든 미혼이든
그런 것은 따지지
않는다. 그냥 들이댄다. 앞서 설명했듯 집요하게 들이댄다. 온갖 이간질과 거짓말도 서슴지 않는다.
부끄러움이란 전혀 느낄 수도 없고 자존심도 없다. 바바에가 조금만 화를 내면 그곳이 길거리든 백화점이든
그 자리에 무릎을
꿇고 사과한다. 한국사람에게는 전혀 느낄 수 없는 이런 상대로 인해 바바에는 피노이에게 쉽게 넘어간다.
그러나 역시 피노이의 목적은 딱 한가지뿐이다. 쏙쏙이다. 바바에의 인생을 책임지고 평생 동반자로 인생을
살겠다는 숭고한
의미 따위는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도 없다. 한국에 시집온 바바에가 한국에 살고 있는 피노이를 만날 수
있는 기회는 재한
필리핀인 행사나 또는 일요일의 교회다. 여기서 대부분의 '들이대는' 일들이 벌어진다. 바로 이 이유로
인해 나는 한국 사람들이
바바에와 결혼하겠다는 것을 극구 반대한다. 시도때도 없이 들이대는 피노이가 큰 문제로 보이지만, 사실
그 보다 더 큰 문제는
그런 얄팍한 수작에 너무나 쉽게 넘어가버리는 바바에가 더 큰 문제다.
인생의 동반자로 생각하기에는 그 심지가 너무나 얕다.
* * *
집요하고 뻔뻔한 피노이에 대해 몇 가지 특성을 설명했다.
물론 이것이 검증된 사실인지, 지나친 비약인지에 대해서는 누구도 확신할 수 없다. 다만 우리가 바바에와
친구 이상의 깊은
인연을 맺으려 할 때 반드시 알아두어야 하는 중요한 변수라는 점 만큼은 확실하다.
다른 막장 드라마를 한 편 선보인다.
이게 내가 지어낸 공상소설이든 어디서 주워들은 이야기든 그건 중요하지 않다.
<사례3>
어느 한국 관광객이 있다고 치자. 필리핀 현지에서 만난 바바에A와 연인 관계가 되었다. 바바에A는 업소
바바에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순수 민간인도 아닌, 이른바 예비군이다. 서로 친해지게 되어 같이 잘 지내던
어느날, 바바에A의 집을 방문할 것을
제안했다. 몇 번의 거절 끝에 바바에A 의 집 방문을 허락했고, 이후 적당한 날에 바바에A의 집을
방문했다.
마닐라에서 두어 시간 떨어진 외곽지역에 자리잡은 바바에A의 집은 전형적인 필리핀 서민의 가정으로, 작은
집에 많은 식구들이
옹기종기 모여살고 있었다. 바바에의 부모, 할머니, 오빠, 동생, 까신 및 이웃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식사를 마친 뒤 해가 기울자
하룻밤 머물고 가기로 했다. 집은 좁고 방은 모자라고... 결국 한방에서 식구들과 함께 하룻밤을
지낸다. 나름대로 손님이라고
한쪽 구석에 마치 신방 꾸미듯 바바에A와 같이 잘 공간을 만들어준 식구들. 한방에 모두 모여 있으니
얌전히(?) 하룻밤을 지내고.
필리핀의 시골정서에 흠뻑 취해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고 귀국한다. 여기까지라면 매우 정상적이고 또
아름다운 장면이다.
그런데 이 이야기에 또 다른 변수가 등장한다.
반갑게 소개하고 악수를 나눈 오빠라는 인물은 오빠가 아니라 실제 바바에A의 남편이다. 여기서부터 얘기가
복잡해진다.
너털웃음을 지으며 인사를 나눈 바로 그 피노이 오빠, 한방에서 바바에A를 꼭 껴안고 잠을 잘 때 한쪽
구석에서 흐뭇한 웃음을
짓고 있는 그 피노이 오빠. 바로 그 피노이 오빠가 친 오빠가 아니고 남편이라면? 이야 말로 환장하고
뒤집어 질 일 아닌가?
우리식 정서로는 상상도 하기 힘든, 일부러 지어내기도 힘든 상황 아닌가?
이 <사례3>에는 세 명의 피노이가 등장한다.
오빠로 알았던 남편 피노이, 바바에A의 아빠, 바바에A의 남동생이다. 이 이야기가 상상 속 소설이
아니라 사실이라면
피노이들이 어떤 인물인지, 어떤 환경에서 자라는 지 가늠이 가능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한 가족이 모두
입을 맞추고 외국인
한 사람을 속이는 것, 이것이 가능한 나라가 필리핀이다. 만약 당신이 알고 지내는, 애인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바바에에게
가끔 전화오는 피노이가 한 명 있다면? 그런데 바바에는 단지 귀찮게 하는 사람일 뿐이라고
말한다면?
당신은 그 바바에를 포기하는 게 좋을 것이다. 그 피노이는 당신의 라이벌이 아니다. 당신이 이길 수
있는 부분은 돈 밖에 없다.
돈으로 이길려고 해봐야 두 사람 배만 불러주게 될 뿐이니까. 한국 사람이 바바에를 두고 피노이와
경쟁한다면 절대로 이길 수
없다. 절대로...... 자존심 상하겠지만 이건 사실이다.
바로 그 자존심 때문에 한국 사람이 이길 수 없는 것이니까.
* * *
피노이를 설명하기 위해 세 가지 사례를 들었다. 그 사례에는 다양한 피노이가 등장한다.
세 가지 사례를 읽고 그 반응은 읽은 사람들 모두 각각 다를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듣고 놀라는 사람도
있을 테고
극단적인 사례에 불과하다고 쪽지로 항의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가 하면 있을 수도 있는 일이라고
고개를 끄덕일 사람도
있을 것이고, 평범한 일이라 대수롭지 않게 여길 사람도 있을 것이다. 결론을 말할 시간이다.
필리핀 여행에 있어서, 특히 바바에와의 인연과 추억에 대해서 가장 큰 걸림돌이 되는 것은 피노이이다.
그 집요한 들이대기와 부끄러움도 모르는 작업에 대해 반드시 알아두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화가 나는 것은
그러한 수작에 손쉽게 넘어가는 바바에들이다.그로 인해 나는 개인적으로 바바에와 각별한 인연을 만들려
하거나 결혼을
생각한다면 적극적으로 말린다. 꿈도 꾸지 말라고 주장한다. 필리핀에 대한 나의 모든 경험을 걸고 말리고
싶다.
잘 알아야 잘 즐길 수 있다. 물론 아닌 바바에도 분명히 있다. 그러나 들이대는 피노이도 분명히 있다.
훨씬 많다.
이 글을 오래전부터 쓰고 싶었지만 한 가지 걸림돌이 있었다.
바바에와 인연을 맺고 있는 사람, 또는 이미 바바에와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고 행복하게 살고 있는
한국사람들에 대한 걱정과
배려 때문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하면 이 세상에는 알아야 할 것이 있고, 알고 나서 조심해야 할
것이 있다는 생각이다.
기분이 나쁠지언정 알아둬서 나쁠 것은 없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이 문제로 고민하다가 바바에를 배우자로
삼아 살아가는
한국사람들이 어떤 식으로 살아가야 하는 지 우연히 그 정답을 찾았다.
필리핀 바바에와 만나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살고 있는 한 사람의 말에서 나는 그 정답을 찾은 셈이다.
그의 말을 그대로
인용한다. 바바에와 만나 가정을 꾸리고 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잘 나타나 있다. “바바에를 배우자로
데리고 산다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매일 매일, 매 시간마다, 매 분마다, 매 순간마다 같이 살고 있는 바바에 숨소리의
미세한 차이 마저도
인식할 수 있을 정도가 되어야 같이 살 수 있습니다.”
바바에와 필리핀....
깊게 들어가면 단점만 보인다.
2012년 1월 22일 일요일
정주영의 조선업 도전 ② “정 회장 사업 일절 거절하시오”
정주영의 조선업 도전 ① `도박도 목숨 거는 도박이었다`미국과 일본에서 차관 얻는 데 실패…박정희 대통령, `도망가지 마라`우리나라 조선업은 몇 년째 부동의 1위를 고수하고 있다. 그것은 하루아침에 이뤄진 것이 아니다. 전 국민이 세 끼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던 시절, 산업기술의 총아라고 할 수 있는 조선소를 만들겠다는 과욕을 어떻게 가질 수 있었겠는가? 그것은 강력한 리더십과 개척자 정신이 없었다면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 중심에 산업 발전에 사활을 걸었던 박정희 대통령과 정주영이라는 걸출한 사업가가 있었다. 두 사람의 불타는 의지가 울산 앞바다를 한국 경제의 전진기지로 만들었고, 지금 세계 조선업 1위의 기초를 쌓은 것이다. 이코노미스트는 이번 호부터 정주영의 조선업 도전기를 연재한다. 그의 불굴의 투지가 CEO들과 독자에게 새롭게 조명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부동의 세계 1위를 고수하고 있는 한국 조선업계가 2006년 9월 15일 세 번째 생일을 맞았다. 세계 최강 조선국의 위용을 뽐내고 있는데도 변변한 기념일이 없었는데, 2004년 국내 조선업 수주가 1000만GT를 달성한 9월 15일을 기념해 ‘조선의 날’을 제정하고 제3회 기념식을 한 것이다. 우리나라 조선업의 위용이 어떤가. 세계적인 조선·해운 시황 분석기관인 영국의 클랙슨이 발표한 세계 조선소 순위에서 현대중공업을 비롯해 삼성중공업·대우조선해양·현대미포조선·현대삼호중공업이 1위에서 5위까지 독식하고 있지 않은가. ‘한국 대표’ 산업으로 조선은 전자와 함께 굴절 없는 성장을 해왔다. 지난해에는 사상 처음으로 200억 달러 수출 고지를 돌파하고 동시에 수주액도 400억 달러를 달성하는 등 그 어느 해보다 풍성한 실적을 기록했다. “배 건조가 토끼 임신보다 빨라”한국의 조선업이 양적인 성장만을 해온 것은 아니다. 기술에 있어서도 세계 조선업계를 긴장시킨 지 오래됐다. 대표적인 것이 세계 조선업계가 꿈꾸어오던 무(無)도크 시대를 열었다는 것이다. 무도크 건조 현장이 세계 최초로 공개된 것이 2004년 10월. 현대중공업이 러시아 노보십에서 수주한 10만5000t급 원유 운반선을 육상에서 건조해 진수하는 데 성공하면서 도크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했던 인식을 일거에 가능한 현실로 증명해보인 것. 한국 조선업의 기술적 향상은 특수선 제작에서도 만족하지 않았다. 어느새 ‘꿈의 상선’으로 불리는 1만TEU급 초대형 컨테이너선 건조 시대를 열고 있었던 것이다. 1만TEU급(1TEU는 길이 20피트 컨테이너)이라면 통상적으로 컨테이너 박스 1만 개를 적재할 수 있는 선박이다. 갑판 면적이 상암 월드컵 경기장의 2배가 넘는 초대형으로 추측하면 된다. 세계 최초라는 말을 하도 여러 번 써서 이젠 싱겁다고 할 정도가 됐지만 또 한번 이 기록을 경신하는 초유의 사건을 현대중공업이 저질러버렸다. 1만2000TEU급 컨테이너선 개발을 어느새 끝냈다고 발표했다. 기술적 성장세가 어디까지 뻗어나갈지 누구도 예단을 하지 못하도록 만들고 있는 셈이다. 이를 두고 세계적인 선주들이 남긴 말이 있다. “현대중공업 제1야드에서 제2야드를 다 돌아보기도 전에 벌써 세계 기록이 경신되는 것 같다. 배를 건조하는 게 토끼가 임신을 시키는 것보다 빠르고 번갯불로 찍어내는 줄 알았다.”그런데 조선업계는 여기서 멈추려 하지 않는다. 그동안 황무지처럼 내버려두었던 요트 건조에 뛰어든 것이다. 막강한 조선 기술에다 정보기술(IT)을 결합한 고부가 제품을 만들어 요트 분야까지 석권해야 직성이 풀리겠다는 얘기다. 요트는 레저·경기용 딩기(Dinghy: 6m 이하) 급과 연안·대양 항해용 크루저(Cruiser) 급으로 나뉜다. 현재 세계 요트 시장은 미국(2만여 척)과 프랑스(8000여 척)·영국(3000여 척)이 주도하고 있다. 국가정보원 자료에 의하면 요트 시장이 2004년에 151억 달러(약 14조원) 정도였지만 2010년에 이르면 210억 달러로 예상된다고 했다. 이 엄청난 시장을 우리 조선업계가 냄새를 맡고 있지 않았을 리 없다. 이런 한국의 조선 산업 성과는 분명 우연히 다가온 것이 아니다. 어쩌면 ‘두 사람’의 야심 찬 의기투합에서 그 질주의 시동이 걸리게 됐다고 해도 무리한 평가는 아닐 것이다. 이 나라 조선 산업을 부흥시킨 주역이 고 박정희 대통령과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었다고 할 때 부인할 수 있는 자료가 있을까? 기자가 조선소와 관련해 정주영 회장을 만나 취재한 것은 꽤 오래 전이다. 조선 산업의 태동기부터 듣고 싶어서였다. 인터뷰는 86년부터 92년까지 몇 차례에 걸쳐 이뤄진 것이다. ▶ 거제도 조선소 전경.조선 大國 만든 두 사람 지금은 비교도 안 되는 규모지만 세계에서 7개국밖에 소유하지 못하고 있던 50만t급 조선소 건설을 우리 정부에서 계획했던 것이 1972년으로 기억됩니다. 당시 정부에서는 한국의 산업 형태를 중화학공업으로 선회하지 않으면 미래의 산업 중흥이 어렵다는 판단에 따라 정부가 야심적으로 추진했던 것이 조선소 건설 아니겠습니까? “지금 생각하면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이에요, 하하하.”당시 정부는 조선소가 완공되면 연간 2억5000만 달러의 외화 획득이 가능해진다는 전망을 했고, 그 시점에 우리나라 수출 총액이 11억7300만 달러밖에 되지 않았던 점에 비춰볼 때 엄청난 금액인데, 과연 조선 산업이 될까 하는 의구심도 있었겠습니다. 그 중차대한 사업을 박정희 대통령이 회장님에게 추진하라고 할 때는 각별히 당부한 말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만. “하하하…, 당부고 뭐고 도망치려고 하다가 잽힌 거지요. 못 피우는 담배까지 대통령 앞에서 뻑뻑 피워대면서 버티기도 했고 말이지요. 담배는 대통령이 피우라고 주시니까 피할 수 없어서 피웠지만. (웃음 속에서 잠시 회상하다가) 사실은 조선 산업이라는 게 어느 날 갑자기 나온 게 아니에요. 그 얘기하면 내용이 많아요. 요즘 젊은이들은 모르고 있는데, 처음에 박 대통령이 고민을 무척 하셨습니다. 1, 2차 경제개발을 추진하면서 수출 시장을 확대해야 한다, 그래가지고 16년 동안이나 끌어왔던 무역 및 관세에 관한 일반협정(GATT) 가입도 하지 않았어요? 근데 수출을 해야 먹고 살 수 있으니까 사력을 다해보았지만 GATT에 가입했어도 한계가 있었어요. 그 당시 경공업 중심의 노동집약 산업으로는 수출도 어렵고 경제 성장의 한계가 있었단 말이지요. 그렇다면 돌파구는 중화학공업을 추진해야 된다, 그렇게 판단하신 거예요. 그래서 3차 5개년 계획이 시작되기 전까지 중화학공업을 가시적으로 역동시킬 수 있도록 해야겠는데 그러자면 우선 필수적으로 육성해야 되는 게 뭐냐, 그게 조선이니까 1단계로 조선 산업을 선택한 겁니다. 그런 배경을 알아야 해요. 조선 산업을 하게 되면 물론 초기는 단순한 조선 공업 수준이 된다 해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미래가 있는 거거든? 거대한 조선소를 만들고 초대형 선박을 건조할 수만 있게 된다면 일시에 기계·철강·전기·전자·해운 등 수많은 연관 산업을 급성장시킬 수 있잖아요. 그걸 내다보신 거지요. 대단한 양반이셨지요.”박 대통령을 만나기 전에 정부로부터 조선 산업에 대한 구상이나 정책에 대한 사전 정보를 들으신 게 있었습니까? “그런 건 없었구요, 그냥 정부가 처음에는 4대 핵공장(4大 核工場)을 한다고 그랬어요. 4대 핵공장이라는 건 핵폭탄을 만드는 공장이 에이구요, 1968년에 박 대통령이 제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 기간 동안에 제철·종합기계·석유화학·조선을 4대 국책 사업으로 설정하고 최대한 정부가 중점적으로 육성하겠다고 밝혔잖아요? 그게 4대 핵공장이지요. 그래가지고 조선소 얘기도 나온 건데, 첨에는 김학렬(당시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씨가 운을 뗐어요. 나는 솔직히 회의적이었지요.”▶ 1977년 현대중공업을 방문한 고 박정희 대통령과 고 정주영 명예회장. 두 사람은 우리나라를 세계적인 조선 대국으로 성장시킨 거목이다.“도망치려다 잽힌 것”왜 회의적으로 생각하셨습니까?“조선소가 그냥 됩니까? 사람들이 울산에 현대조선소를 보러 와서는 얼마나 어렵게 건설했는지도 모르고 본래부터 조선소가 있었던 게 아니냐고 해서 그냥 웃었지만, 조선소 얘기가 나온 그때만 해도 부산에 ‘대한조선공사’가 있었어요. 거기서 대충 1만여t급 배를 만들고 있었는데 그게 창업 이래 계속 적자를 봤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파산하고, 파산 후에는 한진으로 넘어갔는데 생각해 보세요. 대한조선공사가 한번도 흑자를 보지 못하고 파산했을 정도니까 우리나라 조선업이라는 게 말처럼 쉽겠어요? 결코 쉬운 게 아니지요. 물론 조선기술자라는 것도 없었고 말이지요.”그런 정도의 국내 여건에서 조선소를 건설한다는 것은 도박에 가까운 일이었다는 말씀입니까?“(회고해 보니 기막힌 시작이었기 때문인지) 허허헝, 도박도 돈을 거는 도박이 에이고 명(命)을 거는 도박이에요. 나중에 얘기하겠지만 고비가 한두 번 있었던 게 아니에요. 하여간 정부의 강력한 의지도 있었지만 내가 반대를 하니까 하루는 김학렬씨가 대통령께서 찾는다는 겁니다. 그럴 땐 판단이 빨라야 해요. 아이고, 도망이다 하구선 도망갔다가 잽혔지요, 하하항. 근데 대통령의 의지가 여간 강하신 게 아니에요. 반드시 해야만 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첨에는 자신이 없다고 했지만 워낙 눈빛부터 무서우니까 그러면 제가 한번 해보겠다고 나섰지요. 그런데 조선소를 하려면 뭣보다 차관을 얻어야 해요. 우리도 그만한 돈이 없고 정부도 돈이 없으니까. 그러니 차관을 얻으려고 이웃부터 다녔어요. 미국이 우리하고 가깝지 않습니까? 일본하고 미국을 열심히 찾아대녔습니다.”반응이 냉담했을 것 같은데요.“일본이나 미국이, 너희는 후진국이고 그런 배를 만들 능력이 없다, 그렇게 나와요. 한번 시작해보겠다 했는데 그렇게 나오니까 영 맥이 풀려서 발길이 안 떨어져요. 그렇지만 한두 번 거절당했다고 멈출 수 있어요? 다시 여러 사람 찾아대녔는데 결국 다 거절을 당했습니다. 그러니 도리가 없지 않겠어요? 다시 대통령을 만나서 여기저기 다녔던 얘기를 하고 도저히 못하겠다고 그랬더니 ‘도망가지 마시오! 절대 해야 돼!’ 이러시면서 호통을 치시잖아요.”<계속>이호·객원기자·작가출처 : 이코노미스트 872호. 2007.01.19 퍼온글 원본 : 정주영의 조선업 도전 ① `도박도 목숨 거는 도박이었다`[jho93700 작성] 덧글(0)| 관련글메일 | 인쇄 덧글 정보를 불러오고 있는 중입니다. [퍼온글]정주영의 조선업 도전 ② “정 회장 사업 일절 거절하시오” 조회(1) / 추천http://blog.joins.com/chong123/7669443등록일 : 2007-03-07 10:38:47이호 기자의 공개 못한 취재수첩정주영의 조선업 도전 ② “정 회장 사업 일절 거절하시오” 조선업 못하겠다 하자 박 대통령 진노…“그렇게 혼나 본 건 처음” 우리나라 조선 산업은 일제 치하였던 1929년의 ‘방어진 철공소’가 효시였다. 그 후 1937년, 대한조선공사의 전신인 조선중공업주식회사가 1만t급 건조 능력을 갖추고 태동했다. 그러나 조선중공업은 20년 가까이 지나도록 큰 발전을 하지 못한 채 자유당 정부를 거쳐 5·16 군사정부까지 이어갔다. 62년부터 시작된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제1차 5개년 스케줄에도 경공업 우선정책에 밀려 조선 공업은 주요 육성산업 부문에서 제외됐다. 그러다가 67년 국내 조선을 진흥시킨다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면서 ‘조선공업진흥법’이 제정됐다. 하지만 그나마도 60년대 말까지 소형 강선만 제작할 수 있었을 뿐 자금과 기술력 부족으로 대형 선박 건조는 엄두도 내지 못한 채 60년대는 그렇게 흘러갔다. 70년대가 시작되면서 비로소 정부는 제3차 5개년 계획에서 중화학공업을 육성하지 않으면 경제 부흥이 어렵다는 결론을 내리고 조선 공업을 주요 육성 산업으로 지정하면서 ‘조선공업진흥기본계획’이라는 긴 정책안을 마련하는데, 물론 기본계획의 주요 골자는 청와대 비서실이 작성했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었다. 내각에서 조선 공업이 부정적이라는 보고가 올라오자 대통령이 장예준 당시 건설부 장관을 불러 질책하면서 ‘이래도 안 된다는 거냐’고 보여준 것이 그 문건이었다. “무조건 해보란 말이오!”“국무위원이라는 사람들이 의지를 가지고 추진하지는 않고 경제 수준이 함량 미달이라는 반론에 밀려 한걸음도 나가지 못한다면 누가 이 나라 경제를 부흥시킨단 말이오! 1단계로 조선소를 만들어 초대형 선박을 건조할 수 있게 되면 자연히 기계·철강·전기·전자·해운 같은 연관 산업들이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이 조성된다는데 왜 전부 안 된다고만 하느냔 말이오! 해보란 말이오! 해보지도 않고 왜 전부 부정적이야!”금속성 고성을 내지르면서 대통령이 던지듯이 내놓은 계획안에는 정부의 종합국토개발 계획과 임해공업단지개발 계획에 맞춰 조선소 부지를 정하되 생산 규모는 1차 20만t 2척, 15만t 2척, 도크는 20만t급을 건조할 수 있는 규모와 수리선 도크도 같은 규모로 건설한다고 돼 있었다. 문제는 돈이었다. 정 회장은 대통령의 강한 의지를 읽고 차관부터 얻기 위해 애를 써봤지만 빈손으로 돌아와야 했다. 대통령이 느끼는 실망감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회장께서 보기에도 조선 산업이 사양 산업이었습니까?“(갑자기 언성을 높이며) 그런 소리 하지 말아요. 그런 사람들을 보면 참 딱하다는 생각밖에 안 들어. 경제학자라는 사람들이 그런 소리 했어요! 그때는요, 사양 산업이고 성장 산업이고가 어딨어요? 수출도 못하는 나라에서는 그 나라 형편에 맞춰야지 자급자족에 겨우 초근목피로 연명하던 때를 지났는데 돈만 되면 다 하는 거지 우리가 선진국이야? 강대국이에요?” 정 회장은 “찬밥 더운 밥 가려서 먹을 형편이 아니다”며 “사양 산업이라고 하는 건 선진국에서 볼 때 그렇다는 것이고, 우리는 아니다”고 잘라 말했다. “그거예요! 내가 왜 이 얘기를 하느냐 하면 차관 때문에 나갔다가 빈손으로 오니까 그때 대통령 경제자문 교수단이라고 있었어요. 그이들이 김학렬 부총리하고 얘기하다가 ‘것 보라고, 사양 사업이라서 돈 꾸어 줄 나라가 없을 거라고 하지 않더냐고.’ 이러잖아요. 지들이 돈 꾸러 나가봤어? 바깥에서 사양이라든 말든 왜 그걸 우리 형편에 견주느냔 말이에요. 비록 바깥에선 그런 소리 하더라도 우리나라 안에서 그런 소리 하면 안 되지! 빈손으로 왔는데 염장 지르고 있잖아. 그럼 내가 안 될 줄 뻔히 알면서 유람 다니다가 왔다는 거야? 그 당시엔 나룻배도 돈이 되면 만들어야 되는 거예요!”교수들이 생각 없이 얘기를 한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회장님이 놀러다니다 왔다고 생각해서 그랬겠습니까?“나도 잔뜩 긴장하고 내 돈 써가면서 스타일 다 구기고 돌아왔는데 말이지. 몰라서 그렇지 박 대통령 앞에서 도저히 안 되겠다는 말을 해야 될 입장이 돼 봐요. 백묵만 만지는 교수들은 상상도 못해요! 그럭하고 우리 같은 개발도상국가에서는 비교우위를 지니는 산업으로 분석이 됐잖아요. 특히 기계·철강·전기·해운 같은 연관 산업에 굉장한 파급 효과를 줄 수 있는 산업이라고 결론을 내렸고. 더구나 한국은 3면이 바다라는 입지 조건도 좋으니까 서양 사람들이 평가하는 건 맞지가 않다고 대통령도 그러셨단 말예요.”▶ 1980년대 초반의 울산 현대중공업 전경.도망가려다 부총리에게 잡혀정 회장은 많이 서운했던 것 같았다. 그래서였는지 조선소가 완공될 때까지 청와대 자문 교수들이 당시만 해도 제법 발언권을 가지고 있었지만 울산에 내려온다고 해도 일절 만나지 않았다고 했다. 경제는 이론으로 되는 게 아니라는 ‘정주영주의’가 그때부터 생겼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정 회장은 겁이 나서 곧바로 박 대통령을 만날 수 없었다고 실토하며 웃었다. 그 때문에 김학렬 부총리에게 ‘아무리 열심히 하려고 해도 차관을 안 주니 도저히 안 되겠다’는 얘기를 남기고 또 도망갈 생각이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김 부총리가 먼저 눈치채고 딱 잡으면서 굳어버린 경상도 사투리까지 섞어가며 오히려 ‘누구 자빠지는 거 볼라고 그캅니까? 나는 정 회장 말을 이해할 수 있지만 내가 대통령한테 할 수는 없어요. 대통령께서는 꼭 되는 줄 알고 계세요. 4대 핵 공장이 다른 건 안 되더라도 정 회장이 맡아서 하는 건 꼭 된다, 그렇게 믿고 계시고 나도 그래 보고를 드렸는데 인제 와서 못 하겠습니다? 나는 못 합니다. 내가 대통령한테 시간을 얻을 테이까 나랑 같이 들어가서 직접 보고하세요.’ 이러더라는 거였다. 차관은 그 시점에서 얼마나 빌려야 가능했던 겁니까?“제일 우선적으로 만들어야 되는 게 조선소 아니에요? 그때 우선 조선소를 건설하려면 부지 값은 빼놓고 처음 계획한 규모가 정부는 20만t이라고 했는데 내가 조사를 해보니 50만t급이라야 장래가 보이고 되는 거예요. 그러면 50만t급을 만들 수 있는 드라이 도크하고 900m의 의장 암벽에다가 여러 가지 중장비가 있어야 해요. 돈이 있어요? 그게 내·외자를 합쳐서 그 당시에 6300만 달러가 필요하다는 분석이 나왔어요. 국가가 나서서 벌어들이는 돈이 몽땅 11억7000만 달러밖에 안 되는데 말이지, 하하항. 간이 부었지. 그걸로 끝나나? 배를 건조하려면 외국에서 기계를 또 사와야 해요. 기계를 사는 데만 약 8000만 달러가 있어야 했어요. 우리나라가 선박 건조에 필요한 기계를 만드는 것도 아니고 말이지요. 그래서 별짓 다 하면서 돈 꾸어달라고 해봤던 거예요.”김 부총리는 대통령의 의지를 알고 있으니까 금방 시간을 얻어낼 수 있었겠지요. 회장님은 겁이 났는데도 같이 들어가신 겁니까? “하하항, 들어갔지. 도망친 전과가 있어서 벌써 부총리가 눈치챘어. 내가 화장실에 갔다 오겠다고 했더니 부총리가 아이고, 나도 참았는데 잘 됐습니다, 이래요. 같이 가자 이거지, 하하항. 그런데 가만 생각하니까 내가 노력을 안 한 것도 아니고 죄다 말씀드리고 분명하게 해외의 시각들이 이렇더라고 보고를 드리는 게 좋겠어요. 그래야 대통령께서도 생각을 바꾸시든지 대책을 세우시지 않겠어요? 그래가지고 들어갔지요. 부총리는 내 앞에 앉고 대통령은 탁자 가운데 앉으시고. 그래서 아까 얘기한 대로 여기저기 쫓아다니면서 아무리 애를 써도 일본 사업가나 미국 사업가가 상대를 안 합니다. 초보적인 기술을 가지고 무슨 큰 조선업을 하겠다고 하느냐, 당신 나라에서 어떻게 몇십만t 배를 만든다고 감히 넘보느냐, 그런 얘기는 하지도 말라고 그러니 도저히 못 하겠습니다, 그랬지요.”박 대통령이 호통칠 때는 어떤 스타일입니까?“아주 무섭지요. 대통령 만나봤나요? (혼이 날 일이야 없었다고 하자) 눈에서 불이 튀어요. 경제인들 얘기 들어보면 애정이 없는 자리 같으면 그냥 뭐 조용히 웃고 대충 그러느냐고, 그런 정도로 하시는 모양인데 아주 뭐 그때는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정 회장이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느냐고! 못하겠다는 말을 하려고 나한테 왔느냐고!’ 아, 이러시는데 등에서 땀이 날 정도예요. 그런 어른이지요.”실컷 혼내고 담뱃불 붙여줘더 이상은 설명이 안 될 정도였습니까?“부총리도 찍소리 못하고 나도 죽은 듯이 있을 수밖에 없는 거지요. 진심으로 실망을 하시는 거구나 그렇게 느꼈어요. 외국의 반응이 어떨 거다 하는 건 이미 예상을 하신 것 같아. 그랬기 때문에 그걸 돌파하지 못하고 왔다는 걸 화내시지? 내 평생 그렇게 혼이 나 본 건 첨이에요. 그러시더니 부총리 보고 소리를 질러요. 앞으로는 정 회장이 무슨 사업을 한다고 해도 일절 다 거절하시오, 정부가 일절 상대도 하지 마라! 아, 이러시면서 앉았던 의자에서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는 앞만 딱 쳐다보고 일절 말씀이 없는 거야. 부총리도 대답을 못하는 거지요. 햐, 화가 나니까 정면만 딱 쳐다보면서 꼼짝도 않고 그러고 계시는데, 이건 내가 완전히 고문당하는 것보다 더 무서워요. 그러니 나도 뭐 계속 허공만 쳐다보면서 눈만 껌벅거리고 있는 거지요. 버티는 건 내가 대통령보다 경험이 더 많거든. 하하항.” 그리고 침묵이 계속됐는데 박 대통령이 담배를 꺼내 정 회장에게 권하며 라이터불까지 켜주더라고 했다. 박 대통령도 애연가였다. “사실 나는 담배를 안 피우는 사람이지만 처음에도 그랬는데 대통령께서 권하니까 안 피운다는 말은 못하고 뻐끔뻐끔 빨고 앉아 있는 거지요. 그러면서도 한참 동안은 말씀이 없어요. 그게 박 대통령 성품이야. 참 생각이 깊은 분이야. 대통령이 담뱃불을 끄면서 하는 말씀이 그때부터가 그분의 모든 정신이 나오는 거예요. 내가 돌아와서 대통령의 그 말씀을 적어두기도 했는데, ‘정 회장, 그래 한 나라 대통령하고 경제 총수인 부총리가 도와주겠다는데 그걸 못 하겠다고 체념을 해? 언제는 그 일이 쉽다 생각하고 나섰어? 어렵겠다는 각오를 하고 결심이 서서 나섰으면 끝까지 어떻게 하든 그걸 해야지 못 하겠다고 하는 게 말이 돼? 우리가 모든 국력을 기울여서 성원을 할 테니까 다시 나가봐요. 이번에는 구라파로 나가봐요. 구라파를 가서 차관을 주겠다는 나라를 찾아다녀. 사업가도 찾아다니고 말이야! 언제는 그 일이 그렇게 쉬울 거라고 생각했어? 쉬웠으면 벌써 했지. 한 번 나가서 안 되니까 손을 든다는 게 말이 되냔 말이야. 빨리 뛰어나가라고!’ 이러시니 그때는 또 들어갈 때하고는 마음이 달라지는 거예요. 그 자리에서 못 하겠다는 말이 안 나오더라고. 그러면 나가서 한번 더 열심히 쫓아다녀 보겠습니다. 이러고선 냉큼 나왔지 어떡해요. 김학렬씨는 누렇게 됐고. 하하항.”<계속>출처 : 이코노미스트 2007.01.26. 이호 객원기자·작가 퍼온글 원본 : 정주영의 조선업 도전 ② “정 회장 사업 일절 거절하시오”[jho93700작성
2012년 1월 21일 토요일
"朴正熙(박정희)대통령의 눈물"
資料 | 2011/07/28 15:15아래 署名하시는 모든분들, 항상 康寧하시고 諸事如意하시기를 祝願합니다.言語는 思想을 支配하고 思想은 行動을 決定한다. 한글전용이 이나라를 淺薄한 左傾化로 망하게 한다!
"朴正熙(박정희)대통령의 눈물" 최근 ‘박정희(朴正熙) 전 대통령의 눈물’이라는 글이 인터넷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기성세대의 땀과 노력, 그리고 박 전 대통령의 일화를 담은 이 글에 20, 30대 네티즌들은 <우리 세대의 가벼움>을 반성하게 됐다. 가슴이 뭉클하고 눈물이 났다’며 공감을 표명하고 있다. 이 글은 육군사관학교의 김충배 교장이 생도 교육에 사용해 그동안 ‘육사교장의 편지’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실제 작성자는 예비역 장성인 김유복(金遺腹·79)씨. 그가 로터리코리아(한국로터리의 기관지)에 기고한 글은 “60대를 수구 꼴통이라 몰아붙이는 젊은이들이여! 이 글을 읽어 보렴”이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서독 간호학교 유학생 출발인사차 예방1(65.3.24) 청와대 우리 대한민국의 장래를 짊어질 개혁과 신진의 주체, 젊은이 들이여! 여러분들은 5,60대가 겪은 아픔을 얼마나 알고 있는가? 그대들은 조국을 위하여 과연 얼마만큼 땀과 눈물을 흘렸는가? 지금 여러분들이 누리는 풍요로움 뒤에는 지난날 5,60대들의 피와 땀과 눈물이 있었다는 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 5.16혁명 직후 미국은 혁명세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만약 그들을 인정한다면 아시아, 또는 다른 나라에서도 똑같은 상황이 발생할 것이라는 우려에서였다. 그 때 미국은 주던 원조도 중단했다. 당시 미국 대통령은 존 에프 케네디, 박정희 소장은 케네디를 만나기 위해 태평양을 건너 백악관을 찾았지만 케네디는 끝내 박정희를 만나주지 않았다. 호텔에 돌아와 빈손으로 귀국하려고 짐을 싸면서 박정희 소장과 수행원들은 서러워서 한없는 눈물을 흘렸었다. "가난한 한국에 돈 빌려줄 나라는 지구상 어디에도 없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마음에 우리와 같이 분단된 공산국 동독과 대치한 서독에 돈을 빌리려 대사를 파견해서 미국의 방해를 무릅쓰고 1억 4000만 마르크를 빌리는 데 성공했다. 당시 우리는 서독이 필요로 한 간호사와 광부를 보내주고 그들의 봉급을 담보로 잡혔다. 고졸 출신 파독 광부 500명을 모집하는 데 4만6천이 몰렸다. 그들 중에는 정규 대학을 나온 학사 출신도 수두룩했다. 면접 볼 때 손이 고와서 떨어질까 봐 까만 연탄에 손을 비비며 거친 손을 만들어 면접에 합격했다. 서독 항공기가 그들을 태우기 위해 온 김포공항에는 간호사와 광부들의 가족, 친척들이 흘리는 눈물로 바다가 되어 있었다. 낯선 땅 서독에 도착한 간호사들은 시골병원에 뿔뿔이 흩어졌다. 말도 통하지 않는 여자 간호사들에게 처음 맡겨진 일은 병들어 죽은 사람의 시신을 닦는 일이었다. 어린 간호사들은 울면서 거즈에 알콜을 묻혀 딱딱하게 굳어버린 시체를 이리저리 굴리며 닦았다. 하루종일 닦고 또 닦았다. 남자 광부들은 지하 1000미터 이상의 깊은 땅 속에서 그 뜨거운 지열을 받으며 열심히 일 했다. 하루 8시간 일하는 서독 사람들에 비해 열 몇 시간을 그 깊은 지하에서 석탄 캐는 광부 일을 했다. 서독 방송, 신문들은 대단한 민족이라며 가난한 한국에서 온 여자 간호사와 남자 광부들에게 찬사를 보냈다. 세상에 어쩌면 저렇게 억척스럽게 일 할 수 있을까? 해서 부쳐진 별명이 코리안 엔젤이라고 불리었다. 몇 년 뒤 서독 뤼브케 대통령의 초대로 박 대통령이 방문하게 되었다. 그 때 우리에게 대통령 전용기는 상상할 수도 없어 미국의 노스웨스트 항공사와 전세기 계약을 체결했지만 쿠데타군에게 비행기를 빌려 줄 수 없다는 미국 정부의 압력 때문에 그 계약은 일방적으로 취소되었다. 그러나 서독정부는 친절하게도 국빈용 항공기를 우리나라에 보내주었다. 어렵게 서독에 도착한 박 대통령 일행을 거리에 시민들이 플래카드를 들고 뜨겁게 환영해 주었다. 코리안 간호사 만세! 코리안 광부 만세! 코리안 엔젤 만세! 영어를 할 줄 모르는 박 대통령은 창 밖을 보며 감격에 겨워 땡큐! 땡큐! 만을 반복해서 외쳤다. 서독에 도착한 박대통령 일행은 뤼브케 대통령과 함께 광부들을 위로, 격려하기 위해 탄광에 갔다. 광부들의 숙소 방문 고국의 대통령이 온다는 사실에 그들은 500 여명이 들어 갈 수 있는 강당에 모여들었다. 박 대통령과 뤼브케 대통령이 수행원들과 함께 강당에 들어갔을 때 작업복 입은 광부들의 얼굴은 시커멓게 그을려 있었다. 대통령의 연설이 있기에 앞서 우리나라 애국가가 흘러 나왔을 때 이들은 목이 메어 애국가를 제대로 부를 수조차 없었다. 대통령이 연설을 했다. 단지 나라가 가난하다는 이유로 이역만리 타국에 와서 땅속 1000 미터도 더 되는 곳에서 얼굴이 시커멓게 그을려 가며 힘든 일을 하고 있는 제 나라 광부들을 보니 목이 메어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1963년 서독을 방문한 朴대통령이 두이스부르크 시민회관에서 광부들에게 연설하고 있다 대통령을 보고 울고있는 간호원들 (右下)>우리 열심히 일 합시다. 후손들을 위해서 열심히 일 합시다. 열심히 합시다 눈물에 잠긴 목소리로 박 대통령은 계속 일하자는 이 말을 반복했다. 가난한 나라 사람이기 때문에 이역만리 타국 땅 수 천 미터 지하에 내려가 힘들게 고생하는 남자 광부들과 굳어버린 이방인의 시체를 닦으며 힘든 병원일 하고 있는 어린 여자 간호사들. 그리고, 고국에서 배곯고 있는 가난한 내 나라 국민들이 생각나서 더 이상 참지 못해 대통령은 눈물을 흘렸다. 대통령이란 귀한 신분도 잊은 채... 소리내어 눈물 흘리자 함께 자리하고 있던 광부와 간호사 모두 울면서 영부인 육 영수 여사 앞으로 몰려나갔다. 어머니! 어머니! 하며.. 육 여사의 옷을 잡고 울었고, 그분의 옷이 찢어 질 정도로 잡고 늘어졌다. 육 여사도 함께 울면서 내 자식같이 한 명 한 명 껴안아 주며 조금만 참으세요 라고 위로하고 있었다. 행사도중 눈물을 닦으시는 육여사님 광부들은 뤼브케 대통령 앞에 큰절을 하며 울면서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한국을 도와 주세요. 우리 대통령님을 도와 주세요. 우리 모두 열심히 일 하겠습니다. 무슨 일이든 하겠습니다 를 수없이 반복했다. 뤼브케 대통령도 울고 있었다. 연설이 끝나고 강당에서 나오자 미쳐 그곳에 들어가지 못한 여러 광부들이 떠나는 박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를 붙잡고 우릴 두고 어디가세요. 고향에 가고싶어요. 부모님이 보고싶어요 하며 떠나는 박대통령과 육 여사를 놓아 줄 줄을 몰랐다. 호텔로 돌아가는 차에 올라 탄 박대통령은 계속 눈물을 흘렸다. 옆에 앉은 뤼브케 대통령은 손수건을 직접 주며 우리가 도와 주겠습니다. 서독 국민들이 도와 주겠습니다 라고 힘주어 말했다. 강당에 입장하시는 박대통령 서독 국회에서 연설하는 자리에서 박대통령은 돈 좀 빌려주세요. 한국에 돈 좀 빌려주세요. 여러분들의 나라처럼 한국은 공산주의와 싸우고 있습니다. 한국이 공산주의자들과 대결하여 이기려면 분명 경제를 일으켜야 합니다. 그 돈은 꼭 갚겠습니다. 저는 거짓말 할 줄 모릅니다. 우리 대한민국 국민들은 절대로 거짓말하지 않습니다. 공산주의자들을 이길 수 있도록 돈 좀 빌려주세요 를 반복해서 말했다. 당시 한국은 자원도 돈도 없는 세계에서 가장 못사는 나라였다. 유엔에 등록된 나라 수는 120여 개국, 당시 필리핀 국민소득 170불, 태국 220불 등... 이때, 한국은 76불이었다. 우리 밑에는 달랑 인도만 있었다. 세계 120개 나라 중에 인도 다음으로 못 사는 나라가 바로 우리 한국이였다. 1964년 국민소득 100달러! 이 100달러를 위해 단군 할아버지부터 무려 4,600년이라는 긴 세월이 걸렸다. 이후 그대들이 말하는 이른바 우리 보수 수구세력들은 머리카락을 잘라 가발을 만들어 외국에 내다 팔았다. 동네마다 엿장수를 동원하여 머리카락 파세요! 파세요! 하며 길게 땋아 늘인 아낙네들의 머리카락을 모았다. 시골에 나이 드신 분들은 서울간 아들놈 학비 보태주려 머리카락을 잘랐고, 먹고 살 쌀을 사기 위해 머리카락을 잘랐다. 그래서 한국의 가발산업은 발전하게 되었던 것이다. 또한 싸구려 플라스틱으로 예쁜 꽃을 만들어 외국에 팔았다. 곰 인형을 만들어 외국에 팔았다. 전국에 쥐잡기 운동을 벌렸다. 쥐털로 일명 코리안 밍크를 만들어 외국에 팔았다. 돈 되는 것은 무엇이던지 다 만들어 외국에 팔았다. 이렇게 저렇게 해서 1965년 수출 1억 달러를 달성했다. 세계가 놀랐다. 저 거지들이 1억 달러를 수출해하며 한강의 기적이라고 전 세계가 경이적인 눈빛으로 우리를 바라봤다. 조국근대화의 점화는 서독에 파견된 간호사들과 광부들이었다. 여기에 월남전 파병은 우리 경제 회생의 기폭제가 되었다. 참전용사들의 전후 수당 일부로 경부고속도로가 건설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우리 한반도에 동맥이 힘차게 흐르기 시작됐다. 우리가 올림픽을 개최하고, 월드컵을 개최하고, 세계가 우리 한국을 무시하지 못하도록 국력을 키울 수 있었던 것은 그대들이 수구 보수세력으로 폄훼 하는 그 때 그 광부와 간호사들, 월남전 세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대들이 명심할 것은 그 때 이방인의 시신을 닦든 간호사와 수천 미터 지하 탄광에서 땀흘리며 일한 우리의 광부, 목숨을 담보로 이국전선에서 피를 흘리는 우리 국군장병, 작열하는 사막의 중동 건설현장에서, 일한 5,60대가 흘린 피와 땀과 눈물이 있었기에 그대들 젊은 세대들이 오늘의 풍요를 누릴 수 있다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에르하르트 수상과 회담(1964.12.9) 수상관저 (사진 가운데 분이 백영훈 통역관) 반전과 평화데모를 외치며 거리로 몰려나와 교통질서를 마비시키는 그대들이 과연 아버지와 할아버지 세대를 수구세력으로 폄훼 할 자격이 있는가... 그대들이 그때 땀흘리며 일한 오늘의 5,60대들을 보수 수구세력으로 폄훼 하기에 앞서 오늘의 현실을 직시하라. 국가경영을 세계와 미래라는 큰 틀 전체로 볼 줄 아는 혜안을 지녀야 하지 않겠는가? 보다 낳은 내일의 삶을 위해 오늘의 고통을 즐겨 참고 견뎌 국민소득 4만불대의 고지 달성 때까지는 우리들 신,구 세대는 한 덩어리가 되어야 한다. 이제 갈라져 반목하고 갈등하기에는 갈 길이 너무 멀다. 이제 우리 모두 한번쯤 자신을 돌아보며 같은 뿌리에 난 상생의 관계임을 확인하고 다시 한번 뭉쳐보자. 우리 모두 선배를, 원로를, 지도자를 존경하고 따르며, 우리 모두 후배들을 격려하고, 베풀고, 이해 해주면서 함께 가보자. 우리 대한민국의 앞날에 더욱 밝은 빛이 비추어 지리니!! 뤼브케 대통령(70세)과 박대통령(47세) 의장대 사열 (서독 본 도착) 독재를 했기에 지금까지 여러 국민들 한테 욕을 먹고 계시는 양반이다.. 나도 뭐 독재는 욕 먹어 마땅하다고 본다허나 어느 시대든 그 시대에 맞는 정치가 있다고 본다세계 최빈민국 시절 박정희가 대통령이 된 건 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박정희와 실력있는 참모진 그리고 성실히 일하는 국민들이 없었다면지금 우리나라는 없었다고 본다독재는 욕 먹어 마땅하나 좀 더 넓은 시야로 역사를 볼 수 있는 시각을 가지기를 바란다.난 제일 싫어하는 사람들이 중도를 지킨다는 허울에 휩싸인 이상주의자들이다그들만큼 나라를 혼란에 빠뜨리는 존재도 없다고 본다. http://www.bobaedream.co.kr/board/bulletin/view.php?code=politic&No=73532&rtn=%2Fboard%2Fbulletin%2Flist.php%3Fcode%3Dpolitic
2012년 1월 11일 수요일
정몽준도 놀랄 정도… 전여옥, 박근혜에 직격탄"대통령 돼서는 안 되는 후보… 저렇게까지 대통령 되고 싶을까"
정몽준도 놀랄 정도… 전여옥, 박근혜에 직격탄
"대통령 돼서는 안 되는 후보… 저렇게까지
대통령 되고 싶을까""정치는 말과 글로 해야 하는 건데… 이 대통령은 아마추어
정치"▶ 치명적 위기에 몰린 한나라당… 이대로 무너지나… 전체보기
클릭! ▶ 말도 많더니… 이제부턴 박근혜 vs 안철수 맞짱?… 전체보기
클릭! ▶ 헉! 이런 일까지… MB와 측근들 줄줄이 비리 의혹… 전체보기
클릭! ▶ 가카 향해 거침없는 똥침 쏘더니 결국… 줄줄이 쇠고랑?… 전체보기
클릭!
한국아이닷컴 뉴스부
입력시간 : 2012.01.11 17:49:22
수정시간 : 2012.01.11 18:00:40
박근혜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
한때 박근혜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의 최측근이었던 전여옥 의원이 대선주자감이 절대 아니라며
박 위원장을 정면으로 비판하는 책을 출간해 파문이 일고 있다. 정몽준 전 대표가 '이렇게 너무 솔직하게 써도 괜찮은 것인지 나까지 좀 걱정이
된다'라고 말할 정도로 비판의 강도가 세다. 전 의원은 최근 출간한 'i 전여옥 - 전여옥의 사(私), 생활을 말하다'라는 책을
통해 "(박 위원장은) 대통령이 될 수도 없고, 되어서는 안 되는 후보"라며 "내가 당에 들어와 지난 3년 동안 (박 위원장을) 지켜봐 왔다.
가까이서 2년을 지켜보았다. 그래서 나는 잘 알고 있었다. 대통령감은 아니라는 것을"이라고 말했다. 전 의원은 "(이명박 대통령이 아니라 박
위원장이 대통령이 됐다면) 나라를 위해서 그녀가 과연 대통령직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까? 그에 대한 나의 답은 이미 정해졌다. '아니다.
No'였다"라고 했다.전 의원은 책 곳곳에서 박 위원장의 정치적 식견이 크게 부족하다고 주장했다. "박 위원장은
인문학적인 콘텐츠는 부족했다. 신문기사를 보고 분석하는 능력이나 해석하는 깊이 같은 것은 참으로 아쉬운 부분이 많았다" "박근혜는 늘 짧게
답한다. 뭔가 깊은 내용과 엄청난 상징적 비유를 기대했다. 그런데 거기에서 그쳤다. 어찌 보면 말 배우는 어린아이들이 흔히 쓰는 '베이비 토크'와 다른 점이 없어 보인다"라고 말하기도 했다.전 의원은 그러면서도 박 위원장의
권력의지가 매우 강했다고 말했다. 전 의원은 "저렇게까지 대통령이 되고 싶을까 싶었다. 박 위원장의 권력 의지는 대단했다. 그녀에게 있어서는
권력이란 매우 자연스럽고 몸에 맞는 맞춤옷 같은 것이라는 것, 그리고 더 나아가 그녀에는 생활 필수품이라는 것을 말이다"라고 했다. 전 의원은
"박근혜에게 한나라당은 '나의 당'(My way)이었다, 대한민국은 우리 아버지가 만든 '나의 나라(My country)'이었다. 이 나라
국민은 아버지가 긍휼이 여긴 '나의 국민(My people)'이었다. 물론 청와대는 '나의 집(My house)'이었다. 그리고 대통령은 바로 '가업', 즉 '마이 패밀리스 잡(My family's
job)'이었다"라고 덧붙였다.전 의원은 박 위원장의 소통 방식이 비민주적이라고도 했다. 전 의원은 "친박 의원들 사이에는 박 전
대표의 뜻을 헤아리느라 우왕좌왕하는 것이 널리 알려진 일이다. 그러면 박 전 대표는 '제가 꼭 말을 해야 아시나요'라고 단 한 마디 한다고
한다"면서 "선문답하듯 한마디씩 던지는 것은 정치가 아니다. 더구나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해라' 하는 것은 그 자체가 비민주적이다"라고
적었다.전 의원은 박 위원장의 스킨십 태도에 대해서도 "매우 독특하다"면서 비판을 가했다. 전 의원은 "(박 위원장은) 잘 모르는
대중과의 스킨십은 매우 잘한다. 그러나 정작 바로 옆에 있는 사람과의 스킨십은 꺼려한다"면서 대변인 시절 자신이 겪은 일화를
공개했다.전 의원은 "내가 막 대변인이 됐을 때 일이다. 당 사람들이 대변인은 대표와 늘 차를 함께 타는 것이라고 했다. 생판
정치판을 모르는 나는 당연히 그런가보다 하면서 당시 박근혜 대표의 승용차를 탔다. 그런데 그날로 비서관이 내게 말했다. '딴 차 타고 따라 오시라'고. 나는 그때 알았다. 그녀가
불편해 한다는 것을. 그리고 나뿐 아니라 어떤 의원도 그녀의 차에 동승한 적이 매우 드물다는 것은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라고
적었다.전 의원은 박 위원장에게 권위적인 모습이 있다는 주장도 했다. 그는 "2005년 대구 행사에서 박 대표 바로 뒷줄에 앉아 있었다.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옆에 있던 의원들이 내게 말했다. '전
대변인, 뭐하고 있나? 대표님 머리에 (우비 모자를) 씌워드려야지.' 순간 나는 당황했다. 자기 우비 모자는 자기가 쓰면 되는 것 아닌가? 나는
(모자를 씌우려고) 천천히 일어났다. 그러자 카메라 플래시가 미친 듯이 터졌다. 박 대표는 한마디도, 미동도 없었다"고 했다.전 의원는 '나는 왜
박근혜 후보를 지지하지 않았을까?'라는 대목을 통해서는 2007년 대선 당시 박 지지하지 않았던 이유도 공개했다. 전 의원은 "박근혜 후보가
순발력이 부족하고 백단어 공주라는 것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었다"면서 "박정희 대통령 시절 핍박 받았던 한명숙 전 국무총리가 '박근혜
대항마'였다. 모든 것을 다 떠나서 가해자 대 피해자의 구도라, 나는 심각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박근혜 vs 한명숙' 구도가 만들어지면
박 위원장이 패배할 것으로 예상했다는 주장이다. 그는 "나는 도저히 박근혜 카드로는 안된다는 결론을 내렸다. 박근혜가 후보가 된다면 저쪽 후보는 한명숙일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것은 내게는
필패의 카드였다"고 적었다.전 의원은 소속 당에도 쓴소리를 퍼부었다. 그는 "한나라당은 정당으로서의 존재 이유를 상실했다"며
"지금 한나라당은 '박근혜당'이며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당'"이라고 했다. 그는 "안철수 돌풍으로 박근혜 대세론은 꺾였다"면서 "이 대통령의 아마추어 정치로 한나라당의 앞날에는 커다란 먹구름이
끼어 있다"고 했다. 그는 "안철수 현상은 '찻잔 속 태풍'이 아니라 한나라당의 무능이 만든 것"이라며 "이는 기존 정당 체제의 붕괴를
예고한다"고 주장했다. 전 의원은 이 대통령에 대해서는 "정권 재창출을 해야 성공한 대통령으로 남을 수 있다. 아무리 4대강을 성공시켜도 소용없다" "그는 입으로 말하지 않고 성과로서 말하는 CEO 스타일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정치는 말과 글로 하는 것이다"라고 비판했다.정몽준 전 대표는
10일 국회에서 열린 출판기념회에서 축사를 하며 전 의원이 박 위원장을 비판한 내용을 직접 읽은 뒤 "이렇게 너무 솔직하게 써도
괜찮은 것인지 나까지 좀 걱정이 된다"라고 말했다.
"대통령 돼서는 안 되는 후보… 저렇게까지
대통령 되고 싶을까""정치는 말과 글로 해야 하는 건데… 이 대통령은 아마추어
정치"▶ 치명적 위기에 몰린 한나라당… 이대로 무너지나… 전체보기
클릭! ▶ 말도 많더니… 이제부턴 박근혜 vs 안철수 맞짱?… 전체보기
클릭! ▶ 헉! 이런 일까지… MB와 측근들 줄줄이 비리 의혹… 전체보기
클릭! ▶ 가카 향해 거침없는 똥침 쏘더니 결국… 줄줄이 쇠고랑?… 전체보기
클릭!
한국아이닷컴 뉴스부
입력시간 : 2012.01.11 17:49:22
수정시간 : 2012.01.11 18:00:40
박근혜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
한때 박근혜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의 최측근이었던 전여옥 의원이 대선주자감이 절대 아니라며
박 위원장을 정면으로 비판하는 책을 출간해 파문이 일고 있다. 정몽준 전 대표가 '이렇게 너무 솔직하게 써도 괜찮은 것인지 나까지 좀 걱정이
된다'라고 말할 정도로 비판의 강도가 세다. 전 의원은 최근 출간한 'i 전여옥 - 전여옥의 사(私), 생활을 말하다'라는 책을
통해 "(박 위원장은) 대통령이 될 수도 없고, 되어서는 안 되는 후보"라며 "내가 당에 들어와 지난 3년 동안 (박 위원장을) 지켜봐 왔다.
가까이서 2년을 지켜보았다. 그래서 나는 잘 알고 있었다. 대통령감은 아니라는 것을"이라고 말했다. 전 의원은 "(이명박 대통령이 아니라 박
위원장이 대통령이 됐다면) 나라를 위해서 그녀가 과연 대통령직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까? 그에 대한 나의 답은 이미 정해졌다. '아니다.
No'였다"라고 했다.전 의원은 책 곳곳에서 박 위원장의 정치적 식견이 크게 부족하다고 주장했다. "박 위원장은
인문학적인 콘텐츠는 부족했다. 신문기사를 보고 분석하는 능력이나 해석하는 깊이 같은 것은 참으로 아쉬운 부분이 많았다" "박근혜는 늘 짧게
답한다. 뭔가 깊은 내용과 엄청난 상징적 비유를 기대했다. 그런데 거기에서 그쳤다. 어찌 보면 말 배우는 어린아이들이 흔히 쓰는 '베이비 토크'와 다른 점이 없어 보인다"라고 말하기도 했다.전 의원은 그러면서도 박 위원장의
권력의지가 매우 강했다고 말했다. 전 의원은 "저렇게까지 대통령이 되고 싶을까 싶었다. 박 위원장의 권력 의지는 대단했다. 그녀에게 있어서는
권력이란 매우 자연스럽고 몸에 맞는 맞춤옷 같은 것이라는 것, 그리고 더 나아가 그녀에는 생활 필수품이라는 것을 말이다"라고 했다. 전 의원은
"박근혜에게 한나라당은 '나의 당'(My way)이었다, 대한민국은 우리 아버지가 만든 '나의 나라(My country)'이었다. 이 나라
국민은 아버지가 긍휼이 여긴 '나의 국민(My people)'이었다. 물론 청와대는 '나의 집(My house)'이었다. 그리고 대통령은 바로 '가업', 즉 '마이 패밀리스 잡(My family's
job)'이었다"라고 덧붙였다.전 의원은 박 위원장의 소통 방식이 비민주적이라고도 했다. 전 의원은 "친박 의원들 사이에는 박 전
대표의 뜻을 헤아리느라 우왕좌왕하는 것이 널리 알려진 일이다. 그러면 박 전 대표는 '제가 꼭 말을 해야 아시나요'라고 단 한 마디 한다고
한다"면서 "선문답하듯 한마디씩 던지는 것은 정치가 아니다. 더구나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해라' 하는 것은 그 자체가 비민주적이다"라고
적었다.전 의원은 박 위원장의 스킨십 태도에 대해서도 "매우 독특하다"면서 비판을 가했다. 전 의원은 "(박 위원장은) 잘 모르는
대중과의 스킨십은 매우 잘한다. 그러나 정작 바로 옆에 있는 사람과의 스킨십은 꺼려한다"면서 대변인 시절 자신이 겪은 일화를
공개했다.전 의원은 "내가 막 대변인이 됐을 때 일이다. 당 사람들이 대변인은 대표와 늘 차를 함께 타는 것이라고 했다. 생판
정치판을 모르는 나는 당연히 그런가보다 하면서 당시 박근혜 대표의 승용차를 탔다. 그런데 그날로 비서관이 내게 말했다. '딴 차 타고 따라 오시라'고. 나는 그때 알았다. 그녀가
불편해 한다는 것을. 그리고 나뿐 아니라 어떤 의원도 그녀의 차에 동승한 적이 매우 드물다는 것은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라고
적었다.전 의원은 박 위원장에게 권위적인 모습이 있다는 주장도 했다. 그는 "2005년 대구 행사에서 박 대표 바로 뒷줄에 앉아 있었다.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옆에 있던 의원들이 내게 말했다. '전
대변인, 뭐하고 있나? 대표님 머리에 (우비 모자를) 씌워드려야지.' 순간 나는 당황했다. 자기 우비 모자는 자기가 쓰면 되는 것 아닌가? 나는
(모자를 씌우려고) 천천히 일어났다. 그러자 카메라 플래시가 미친 듯이 터졌다. 박 대표는 한마디도, 미동도 없었다"고 했다.전 의원는 '나는 왜
박근혜 후보를 지지하지 않았을까?'라는 대목을 통해서는 2007년 대선 당시 박 지지하지 않았던 이유도 공개했다. 전 의원은 "박근혜 후보가
순발력이 부족하고 백단어 공주라는 것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었다"면서 "박정희 대통령 시절 핍박 받았던 한명숙 전 국무총리가 '박근혜
대항마'였다. 모든 것을 다 떠나서 가해자 대 피해자의 구도라, 나는 심각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박근혜 vs 한명숙' 구도가 만들어지면
박 위원장이 패배할 것으로 예상했다는 주장이다. 그는 "나는 도저히 박근혜 카드로는 안된다는 결론을 내렸다. 박근혜가 후보가 된다면 저쪽 후보는 한명숙일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것은 내게는
필패의 카드였다"고 적었다.전 의원은 소속 당에도 쓴소리를 퍼부었다. 그는 "한나라당은 정당으로서의 존재 이유를 상실했다"며
"지금 한나라당은 '박근혜당'이며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당'"이라고 했다. 그는 "안철수 돌풍으로 박근혜 대세론은 꺾였다"면서 "이 대통령의 아마추어 정치로 한나라당의 앞날에는 커다란 먹구름이
끼어 있다"고 했다. 그는 "안철수 현상은 '찻잔 속 태풍'이 아니라 한나라당의 무능이 만든 것"이라며 "이는 기존 정당 체제의 붕괴를
예고한다"고 주장했다. 전 의원은 이 대통령에 대해서는 "정권 재창출을 해야 성공한 대통령으로 남을 수 있다. 아무리 4대강을 성공시켜도 소용없다" "그는 입으로 말하지 않고 성과로서 말하는 CEO 스타일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정치는 말과 글로 하는 것이다"라고 비판했다.정몽준 전 대표는
10일 국회에서 열린 출판기념회에서 축사를 하며 전 의원이 박 위원장을 비판한 내용을 직접 읽은 뒤 "이렇게 너무 솔직하게 써도
괜찮은 것인지 나까지 좀 걱정이 된다"라고 말했다.
`국민생각' 창준위 발족..내달 중순 창당
`국민생각' 창준위 발족..내달 중순 창당
北개발계획수립 등 7대국정과제 제시
"4월총선에 200명 이상 후보 낼 것"
(서울=연합뉴스) 김호준 기자 = 중도 신당인 국민생각(가칭)이 11일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과 장기표 녹색사회민주당 대표의 주도로
창당 발기인 대회를 갖고 창당준비위원회를 발족시켰다.
창당준비위는 내달 중순 창당한 뒤 4ㆍ11총선에서 200명 이상의 후보를 내고 70~80석을 확보하는 것을 목표로 제시했다.
이날 오후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발기인 대회에는 신당 참여 인사를 중심으로 1천여명이 참석, 4ㆍ11 총선에서 새 바람을
일으키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합리적 진보와 개혁적 보수의 통합'을 지향하는 이 신당에는 전직 국회의원과 고위 관료가 대거 참여했다.
전직 의원으로는 박계동 전 국회 사무총장과 윤건영 연세대 교수, 배일도 한국사회발전전략연구원 대표, 김용태 전 청와대 비서실장, 김경재 전
민주당 최고위원 등 10여명이 참여 의사를 밝혔다.
고위 관료 출신으로는 김석수 전 국무총리와 이명현 전 교육부 장관, 김진현 전 과학기술처 장관, 허신행 전 농림수산부장관, 정태익 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 등이 발기인에 이름을 올렸다.
신당 측은 한나라당과 민주통합당이 총선을 앞두고 공천 문제 등으로 내홍을 겪는 과정에서 기성 정치권 인사도 대거 결합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신당은 7대 국정과제로 ▲북한 개발계획 수립 ▲헌법적 가치 수호 ▲돈봉투 등 정치부패척결 ▲이념과 지역패권에 기초한 양당구조 혁파
▲대기업과 중소기업 및 자영업 상생구조 마련 ▲분배개선 5개년 계획 수립 ▲자연과 인간이 공생하는 지속가능한 생태공동체 지향을 제시했다.
이날 발기인 대회에는 한나라당의 정몽준 전 대표, 권영세 사무총장, 인명진 전 윤리위원장을 비롯해 이기택 전 민주당 총재,
조국평화통일불교협회 회장인 법타스님, 서경석 기독사회책임 상임대표 등의 외부 인사도 참석했다.
hojun@yna.co.kr
北개발계획수립 등 7대국정과제 제시
"4월총선에 200명 이상 후보 낼 것"
(서울=연합뉴스) 김호준 기자 = 중도 신당인 국민생각(가칭)이 11일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과 장기표 녹색사회민주당 대표의 주도로
창당 발기인 대회를 갖고 창당준비위원회를 발족시켰다.
창당준비위는 내달 중순 창당한 뒤 4ㆍ11총선에서 200명 이상의 후보를 내고 70~80석을 확보하는 것을 목표로 제시했다.
이날 오후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발기인 대회에는 신당 참여 인사를 중심으로 1천여명이 참석, 4ㆍ11 총선에서 새 바람을
일으키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합리적 진보와 개혁적 보수의 통합'을 지향하는 이 신당에는 전직 국회의원과 고위 관료가 대거 참여했다.
전직 의원으로는 박계동 전 국회 사무총장과 윤건영 연세대 교수, 배일도 한국사회발전전략연구원 대표, 김용태 전 청와대 비서실장, 김경재 전
민주당 최고위원 등 10여명이 참여 의사를 밝혔다.
고위 관료 출신으로는 김석수 전 국무총리와 이명현 전 교육부 장관, 김진현 전 과학기술처 장관, 허신행 전 농림수산부장관, 정태익 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 등이 발기인에 이름을 올렸다.
신당 측은 한나라당과 민주통합당이 총선을 앞두고 공천 문제 등으로 내홍을 겪는 과정에서 기성 정치권 인사도 대거 결합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신당은 7대 국정과제로 ▲북한 개발계획 수립 ▲헌법적 가치 수호 ▲돈봉투 등 정치부패척결 ▲이념과 지역패권에 기초한 양당구조 혁파
▲대기업과 중소기업 및 자영업 상생구조 마련 ▲분배개선 5개년 계획 수립 ▲자연과 인간이 공생하는 지속가능한 생태공동체 지향을 제시했다.
이날 발기인 대회에는 한나라당의 정몽준 전 대표, 권영세 사무총장, 인명진 전 윤리위원장을 비롯해 이기택 전 민주당 총재,
조국평화통일불교협회 회장인 법타스님, 서경석 기독사회책임 상임대표 등의 외부 인사도 참석했다.
hojun@yna.co.kr
피드 구독하기:
글 (Atom)
- 마이피플
- 트위터
- 페이스북
더보기얼마전에 아고라에 왠 등신빙신진따가 공적자금으로 빚 탕감해달라고 했다가 졸라 욕먹고 반대 달렸다,
하우스푸어야 정신차려라.
너희들은 인생의 낙오자이며 본인과 가족을 망하게 하며 사는거 자체가 도움이 안되는 인간쓰레기이다.
물론 하우스푸어의 자식도 불우한 가정환경에서 자라나 문제아가 되고 만다.
아파트 대출금을 세금으로 갚아달라고?
다 먹고 살려고 그런거라고?
그럼 주식하는 사람 빚도 갚아줘야 겠네?
사업하다 망한 사람도 빚 갚아줘야 겠네?
어이구야 도박빚도 세금으로 갚아줘야 겠다!!!!
하우스 푸어들은 아고라 찝적거릴 시간에 컴퓨터 내다팔고 대리운전이나 뛰어라.
그리고 애엄마들, 아파트 안팔린다고 게이버까페에 글 쓸 시간에 마트가서 캐셔라도 하고 도우미 라도 해라.
그리고 자식들 학교 다녀봤자 어차피 실패한 인생 살테니 학교 때려치고 공장이나 가라.
솔직히 월 3백만원 대출이자로 척척 못내는게 인간이냐? 노숙자 거지색히보다 못하지...
그나마 노숙자는 공적자금으로 빚 갚아달라고는 안한다. 노숙자 보다 못한 인간들아!!!
인생실패자, 머리를 장식으로 달고 사는 사람들, 살아봤자 쓰레기인생인 인간말종들을
우리는 하우스푸어라고 부르죠.
----------------------
덧붙여 하우스푸어들을 인간쓰레기 실패자 낙오자로 만들어주신
이명박 대통령님께 감사감사 무한감사 !!!!
빚내서 집산 하우스 푸어들 찌질대는 모습 내려다보고 놀려먹으면서 살 날이 올줄은 몰랐어요~
이명박 대통령님 감사해요~ >ㅁ<
아파트 시장 박살내주셔서 감사해요오~
이명박 대통령 뽑은 분들도 정말 감사드려요~
이명박 대통령님 뽑은 사람중에 대출 받아 아파트 산 분들 단 한분도 없다는거 알아요~그쵸? ㅋㅋㅋㅋ
아놔 이러다가 나 새무리당 지지자로 오해받음 곤란한데;;;
제가 아파트 시장 박살내주신 이명박 대통령을 존경하긴 하지만 전 기본이 노언니 빠란 말이예요.
하우스 푸어들 댓글 볼 시간에 대리운전 열심히 뛰세요.
요즘 택시도 파업한다니 이럴때 팍팍 벌어야지요??